며칠 전에 딸아이 학교에서 이번 학기의 첫번째 학부모-교사 면담이 있었다. 딸아이는 지금 9학년으로 이곳 미국에서는 고등학교 1학년이다. 미국의 교육제도는 공립학교라 해도 지역마다 다른데 이곳 앤아버의 고등학교는 반도, 담임교사도 없으며 학부모-교사 면담 때는 각 교과 담당 교사들을 만나게 된다.
한국의 고등학교와는 달리 각 교과 담당 교사들은 자신의 교실을 갖고 있고, 수업 때는 학생들이 선생님을 찾아 교실을 이동하게 되어 있어서, 면담 때면 학부모들도 자녀가 듣는 수업의 교실을 찾아 돌아다니며 담당 교사들을 만나야 한다. 그래서 만나는 순서를 요령껏 잡지 않으면 동선이 길고 복잡할 뿐 아니라 약속 시간을 맞추느라 허둥대기 십상이다. 10분 간격으로 다음 학부모와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늦으면 곤란하다. 딸아이는 6과목을 듣는데 짧은 영어로 제대로 수업을 따라가는지 염려할 수밖에 없는 나는 모든 과목의 교사들을 다 만나기로 약속해놓고 분주히 돌아다녔다.
교사들은 학생에 관한 자료를 준비해놓고 학부모를 맞이한다. 자료란 기본적으로 학생의 성적이다. 이번 중간 성적표는 면담 4일 전에 이미 우편으로 받아서 딸아이의 성적은 알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수시로 학부모에게 전화를 해 자동녹음된 학교 행사나 모임 등 새 소식을 전해준다. 성적표는 학생을 통하지 않고 직접 집으로 우송한다. 교사들이 면담자료로 준비해두는 것은 성적표에 기록된 성적의 상세한 내용, 즉 성적 산출의 근거이다.
2월 한달의 성적이지만 어떤 과목도 한 두 번의 시험으로 성적이 나온 것은 없다. 각 과제물의 제출 여부와 평가 그리고 몇 차례의 쪽지 시험 결과들이 모두 점수화되어 있고, 각 과목마다 그것이 대개 7~10개 정도는 된다. 그 합계의 평균이 성적표에 기록된 성적이다. 교사는 그 자료에 근거해서 중간 성적을 어떻게 받았는지 설명해주고 숙제를 꼬박꼬박 냈는지 혹은 늦게 냈는지, 아이의 학습 상황은 어떤 추이를 보이는지 등을 이야기해준다. 1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과목별로 아이가 학교 수업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웬만큼은 파악할 수가 있었다. 더불어 수업에서의 태도도 설명해준다. 조용하다든가, 우스운 소리를 잘 한다든가, 지난 학기에 비해 활발해졌다든가 하는 것도 알 수 있고 수업 외의 에피소드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각 교과 담당 교사들이 이 정도로 아이들을 개별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수업당 학생 수가 한국에 비해 적고(30~35명) 모든 수업이 매일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곳 고등학교의 시간표는 매일 똑같다. 필수·주요 과목이 있긴 하지만 한국으로 치자면 이른바 국·영·수 뿐 아니라 음악·미술·체육도 매일 한다. 담당 교사들이 매일 수업을 통해 학생들을 만나니, 개개인의 상태를 그만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교사들이 학생들의 학습 상황을 꼼꼼히 챙겨 일일이 점수화해서 성적 산출 근거를 마련하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이곳 공립학교의 비교적 좋은 여건과 교사들의 직업정신이 그 기반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동안 학교의 여러 활동을 지켜보면서 새롭게 느낀 것은, 학교가 그런 시스템을 만들도록 요구하고 지원하는 학부모들의 존재이다. 지난 학기 첫번째 PTSO(학부모-교사-학생회) 모임 때 많은 학부모들이 부부가 함께 참가한 것을 보고 놀랐는데 학부모-교사 면담 때에도 부부가 함께 각 교과 담당 교사들을 만나러 다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또한 학교의 각종 활동에 학부모가 여러 형태로 관여하고 있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미국은 지역에 따라 공립학교의 여건이 상당히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중산층이 많은 소도시로서 자녀 교육에 열성인 부모들이 많다. 한국 부모들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열의가 학교의 교육 현장과 연결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새삼 느낀 하루였다. <한영혜 (한신大 사회학교수·미시간大 교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