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자와 장애인의 이동권을 사회적 의제로 삼아 도시를 인간적으로 바꾸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우리의 도시는 자동차와 물류의 소통에만 급급하고 정작 도시의 주인인 인간들의 통행에는 청맹과니이다. 당국자들의 인식도 높지 않으며, 시민들은 불편에 이력이 나서 아예 체념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평소에 우리가 지나다니던 길을 자세히 돌아다보자. 자동차들이 통행하는 도로는 곧게 뻗어 있지만, 보행자를 위해 비워져 있어야 할 인도는 무질서하게 주차된 자동차들, 입간판과 같은 광고물들 그리고 상가에서 내놓은 물건들이 모두 ‘점거’하고 있다. 거기다 무신경하게 세워진 전봇대와 배전반들도 통행을 가로막는다. 인도의 바닥도 반듯한 곳이 드물며, 장식용 화분이 통행을 방해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좁은 도로 주변이나 상가 주변에서 더 심하다. 이것이 비장애자들에게는 만성이 되었다손 치더라도 장애인들에게는 가혹한 현실이다. 장애인들을 위해 설치했다는 지하철의 휠체어 리프트는 비장애인이 1~2분에 오르내릴 계단을 오르내리는 데 20~30분의 시간을 소비해야만 한다. 또 잦은 고장 때문에 이용하지 못할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몇몇 역에서는 안전관리를 소홀히 해서 추락한 사건마저 발생했다. 국정감사결과 전국에 설치된 1천500개의 휠체어 리프트 가운데 단 27대만이 안전 검사를 받았다고 하니 이를 ‘살인기계’라고 부르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모든 지하철역에는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한 승강기 설치를 서둘러야 한다. 장애인들에게 통행할 수 없는 도시는 사실상 ‘감옥’이다.
새로 조성되는 도로와 건물의 이동공간은 철저히 장애인의 이동권을 기준으로, 그리고 보행자의 입장에서 설계되어야 한다. 초기 시공비만 감안할 것이 아니다. 설계와 시공 미비로 인해 겪어야 하는 사회적 비용, 즉 시민들의 고통과 불편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요코하마의 상업지구인 이세자키조(櫻木町)는 장애인의 이동권을 이상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횡단보도가 있는 곳은 물론 모든 도로와 인도 사이의 턱을 없앤 보행자 중심의 거리이다. 인천의 신포동과 그 역사적 배경이 유사한 모도마치(元町)의 패션 거리도 배울 게 많은 곳이다. 그곳의 상인들은 보행자들의 통행을 위해 도로 양쪽에 위치한 모든 상가 1층건물의 건축선을 1.82m씩 뒤로 물렸다. 한낮인데도 상점 앞에 내놓은 물건이나 인도에 주차해놓은 차량을 볼 수 없었다. 인도를 주차장처럼 여기고 상품의 진열대를 인도에다 내다놓아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우리의 거리 풍경에 익숙한 필자에겐 부러운 광경이었다.
상인들이 보행자들에게 공간을 양보해 줌으로써 침체된 상가가 더 활성화될 것이라는 상인 조합의 과감한 판단과 끈질긴 설득에 주민들이 동의했고, 당국은 거리 조성 사업에 대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정부는 가로 정비와 포장은 물론 전선을 완전히 지하 매설로 바꿔줌으로서 통행을 방해하던 전주와 배전반, 시선을 어지럽히던 전선들이 깨끗이 사라지게 되었다.
서울시에서 시도한 ‘걷고 싶은 거리’ 조성사업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세심하지 못하고, 물건을 인도에 내놓아 도로를 사유화하는 상인들의 관행은 여전하다. 도시에서의 이동권 확보가 행정당국의 능동적인 행정과 주민들의 각성없이는 불가능함을 알려준다. 인천에도 문화의 거리 조성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주변 상인들과 주민들을 설득하지 못하면 성사되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한 서명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 운동의 결과로 도시에서의 이동권이 개선된다면 그 혜택은 장애인들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도시 주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따라서 이 운동은 결코 장애인들만의 몫만은 아니다. 인간적인 도시와 사회를 만들려면 장애인의 관점이 도입되어야 한다.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장애인과 노인, 여성과 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을 준비한 후보, 그리고 지금까지 이들을 위해 실천해 온 ‘인간적인’ 후보에게 많은 사람들이 투표하면 좋겠다. <김창수 (인천문화정책연구소장)>김창수>
이동권과 인간적인 도시
입력 2002-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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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24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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