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예술의 중요성은 이제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

문화예술정책은 21세기의 국가 전략 속에서, 그리고 지방 발전 전략 속에서 중요한 항목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정책의 요점들은 대부분 문화회관이나 박물관과 문화시설을 확충하는 것이나, 문화예술행사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것인데, 그런 가시적인 사업들만으로 우리가 바라는 '문화의 세기'는 오지 않는다. 문화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 교육과 환경에 눈을 돌려야 한다.

주위에 있는 초등학교 교정을 둘러보면 참으로 신기하다. 학교 건물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주변 환경과 달리 수십년 전의 표정 그대로여서 사뭇 향수를 느낄 만하다.

그러나 그것은 아이들이 공부하고 생활하는 환경에 대해 그 동안 방치해 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초등학교의 건물은 대부분 시멘트벽이며 미색 페인트로 거친 살결을 가리고 있다. 아이들만 빠져나가면 수용소나 군사시설물처럼 무표정하고 썰렁하다.

교육기관 중 대학은 예외이다. 캠퍼스의 조경과 건축에 비용을 아끼지 않아 예술품 수준의 건물이 상당수에 달한다. 사실 초등학교의 건물이 더 아름다워야 하는 것 아닐까? 어떤 예술적 고려도 없이 지어놓은 황량한 건물들을 바라보고 그 속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심성을 생각해야 한다.

초등학교 교정의 조형물은 더욱 가관이다. 대부분의 초등학교에는 '세종대왕 상'과 '이순신 장군 상'이 설치되어 있으며 '독서하는 학생 상'이 그 다음 순이다. 초등학교 교정이 학교 나름의 특색이 없는 것은 이런 상투적인 교육용 조형물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아이들의 키보다 높은 작품대위에 서있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은 진짜 동상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구리색이나 청색 페인트를 입혀 놓았지만,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재질이 시멘트나 플라스틱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못한다.

이 복제품들은 예술적 완성도는 말할 것도 없고 최소의 사실성도 발견하기 어려운 저급한 상징물들이다. 모든 학교에 동일한 상징물을 설치하여 애국심이나 민족문화를 고양하겠다는 구태의연한 발상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조악한 모조품들을 대부분의 초등학교에 '표준 조형물'처럼 세워두고 우리가 문화예술의 발전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학교가 위치한 지역의 정체성과 관련되거나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을 설치해야 한다. 그리고 높다란 작품대 위에 위인들을 모셔놓고 숭배를 강요하지만 아이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시멘트 덩어리에 불과하다. 차라리 아이들이 다가가서 만질 수 있는 인간적인 조형물이 필요하다.

입시위주의 지식중심교육으로는 '홍익인간'을 길러낼 수 없다. 백화점의 끼워팔기 상품처럼 전락한 예체능 과목을 강화하고 교육과정 전체를 문화교육의 관점으로 개편하는 것이 황폐해진 교육을 치유하는 대안이다.

아울러 학교의 조악한 문화환경 개선도 미룰 일이 아니다. 예술성이나 최소한의 인간미도 없는 가짜들을 걷어내고 진품을 설치해야 한다. 예술단체나 작가들이 활동하는 지역이나 자신의 모교에 예술품을 보내는 운동을 벌이는 것은 어떨까? 필자의 연구실에서는 십정초등학교가 내려다 보인다.

내 아이들이 다니는 이 학교의 교정에도 '이순신 상'과 '세종대왕 상' 같은 볼품없는 모조품들이 어김없이 서있다. 그런데 이 학교 건물 전면에 “우리학교는 날마다 내가 새롭게 크는 곳입니다”라고 커다랗게 써놓았다. 이 말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한편으로는 공허하고, 또 한편으로는 부끄럽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에게만 '환경정리'를 시키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