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인들이 꿈꿔온 영원한 이상향은 '무릉도원'(武陵桃源)이었다. 도연명의 '도화원기'에는 일과 휴식이 구분되지 않은 한가로운 무릉의 삶이 묘사되어 있다. 그곳의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에 대해 알지 못한다.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바둑을 두는 노인을 그린 신선도 역시 동양적 유토피아를 시각화한 것이다. 반대로 가장 무서운 형벌은, 신화 속의 시지프스처럼 희망도 가치도 없는 노동을 계속해야 하는 것이다.
주5일 근무제의 시행을 둘러싸고 노-사-정 간 계속된 지루한 줄다리기가 끝나고 본격적 시행이 눈앞에 다가왔다. 지금까지의 논쟁의 핵심이 생산성을 떨어뜨리지 않으려는 경영자의 입장과 노동시간을 줄이려는 노동자의 입장 간의 충돌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노동시간의 단축이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사회적 의제로 되어야 한다.
만약 여가시간의 증가가 문화산업이 조장하는 소비의 증가로 이어진다면, 노동자들은 늘어난 소비만큼 더 일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지며 저소득층의 가계는 더욱 빠듯해질 것이다. 주5일근무제를 대비한 사회적 준비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면 그같은 우려는 현실화될 공산이 크다.
늘어난 여가시간은 고된 노동으로 지친 심신을 회복하고 일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어야 하며, 바쁜 일상으로 소원해진 가족과 인간관계를 두텁게 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동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어야 한다.
'여가 시간의 증가'가 진정한 '여가의 증대'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과 같은 공공문화기반시설과 극장이나 공연장과 같은 문화공간의 대대적 확충이 필요하다. 물론 이러한 시설의 확충과 함께 문화기반시설의 지역적 불균형 해소와 공공성이 결여된 운영방식의 개선 등이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
여행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희망하는 여가활동이지만 시간과 비용 때문에 실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저렴한 비용으로 떠날 수 있는 대안적 여행 프로그램을 환경및 문화관련 시민단체들이 개발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방정부나 농민들의 협조를 얻어 도시 근교의 민박형 농가를 확보하여 농경체험형 여가활동도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여가가 늘어났다고 해서 주말마다 여행을 떠날 수는 없다. 그렇게 된다면 경제적 부담의 증가뿐 아니라 환경파괴와 상시적 교통체증과 같은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게 된다. 가급적 도시 내에서 여가를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여가 패턴이 자리 잡아야 한다.
이 점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도시공원이나 광장과 같은 휴식공간을 확충하는데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도심공원들은 주로 녹지와 조경수를 감상하는 장소로 설계되었다. 이제부터는 다수의 시민들이 다양한 여가활동을 즐길 수 있는 다목적 휴식활동 공간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그 외에 도서관의 추가 건립과 장서 구입비의 증액이라든가 시민들의 자율적인 문화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시설과 프로그램, 도시의 문화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마을 축제'의 활성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문명은 노동의 결과이다. 인간다움과 자아를 실현하는 길은 노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여가의 덕택이기도 하다. 영어의 'school'이 원래 여가를 뜻하는 그리스어 'schole'에서 나왔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학문이나 예술적 진리 탐구도 바로 여가와 휴식의 산물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주5일근무제는 지루한 일상과 노동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신과 이웃의 삶을 되돌아 보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최소의 비용으로 여가를 누릴 수 있는 여가활동의 프로그램에 관심을 기울이자. 정부와 지자체는 각종 문화기반시설의 확충에 박차를 가하고, 기업들 역시 노동자들의 여가활동에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노동의 결과가 사회를 발전시켜 온 것과 마찬가지로 여가의 결과도 사회 발전의 바탕이 된다. 창의력과 아이디어가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지식정보화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김창수(인천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대안적 여가를 위하여
입력 2003-08-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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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8-11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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