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지역 문화예술회관의 부실운영에 대한 감사원의 지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최근 감사원은 1999년부터 2002년까지 925억원의 국고보조금이 투입된 각 지역의 문화예술회관 확충 실태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감사를 하던 시점에 이미 건립됐거나 건립중인 문예회관은 당초 목표의 162%인 140개에 달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운영 전문인력 및 문화프로그램의 부족 등으로 회관 가동률이 매우 저조한데 있다. 이는 문예회관이 마치 부자가 경치 좋고 한적한 곳에 집을 지어 놓고 가끔 한번씩 들르는 별장이 되어버린 꼴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이 그렇게 여유가 있나? 아니면 시민들의 문화 향수가 충분한가? 둘 다 이유가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 같은 고질병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감사원은 문화관광부가 건립비 지원대상을 선정할 때 회관 건립부지와 지방비 확보 계획에 대한 심사에 치중하는 심사원칙을 지적한 모양이다. 올바른 지적이긴 하나 그보다는 우선 사업주체인 지자체에 대한 책임을 묻고 싶다.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짓는 문예회관을, 충분한 타당성 검토와 치밀한 준비 없이 지자체가 먼저 나서서 시작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경기도 문예회관이 그랬고, 성남시와 고양시가 건립중인 문예회관이 그렇다.
올바른 문제제기를 하는 시민들의 반대를 묵살하면서까지 잘못된 사업을 강행하는 배짱이 놀라울 따름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이른바 '상자 논쟁’이 있었다. 건물만 지어놓고 제대로 운영을 못하는 현상을 비판, 개선하자는 움직임이었다. 국책 연구기관의 보고서를 통해서도 이 같은 사례가 두루 알려졌음에도 타산지석으로 삼지 못하는 현실이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이처럼 지자체가 잘못된 문화행정을 하는 데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어 보인다. 첫째, 문화를 장식품, 혹은 부차적인 것 정도로 생각하거나 돈벌이 수단으로만 파악하는 도구적 관점이다. 둘째, 문화행정의 전문성 부족이다. 셋째, 문화논리가 아닌 정치논리에 따른 문화행정 시행이다.
지역 현실에 맞는 문화정책의 원칙과 방향을 수립해 일관되게 시행하기보다는 선거결과에 따른 논공행상으로 자리를 만들고, 정치적 영향력을 감안해 사업을 분배하는 방식의 문화행정이 흔하다. 마지막으로, 독선적이고 비민주적인 행정관행이다. 중요한 사업 결정을 충분한 사회적 합의 없이 진행한다거나 시민의 참여를 가로막는 제한이 지나치다.
물론 이러한 문제들의 뒤에는 '문제 있는' 단체장이 있다. 잘하는 일이 왜 없겠는가만 경기도의 경우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최근 경기도가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을 생략한 채 문화예술회관 독립법인화를 추진하려한 것이 이런 우려를 더욱 증폭시킨다. 사실 경기도 문예회관 건립과 예술단 창단 등은 처음부터 잘못 끼운 단추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과학적인 근거에 의한 타당성 검토 및 운영계획 없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드러난 문제에 대한 해결방식이 잘못된 것까지 면책될 수는 없다. 경기도 문화예술회관의 운영 문제와 국악당 개관에 따른 어려움을 민영화라는 수단을 통해 한번에 해결하겠다는 지금의 발상은 해법과 방식 모두가 문제다. 경기도 문예회관과 예술단 등은 시장논리가 아닌 문화적 공공성이라는 목적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존재이다. 애당초 시장영역이 아니다.
그렇다면 효율성을 중심적 기준으로 구조개혁을 하려는 시도는 옳지 못하며 반드시 문화적 공공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할 것이다. 효율성과 문화적 공공성의 조화를 통해 시민과 예술단 등 다양한 문화적 주체가 함께 만족할 수 있는 지혜를 찾는데 노력할 때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것을 이끌어 내는 것이 진정한 문화행정이 아닐까./지금종(문화연대 사무처장)
문화행정, 이대론 안된다
입력 2003-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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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22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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