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야의 불법 대선자금 문제가 정치권은 물론 경제계 전체까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자금을 건넨 대기업 임원들이 줄줄이 소환되고 총수마저 수사받는 등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기름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주가가 폭락하고 대외신인도 추락이 우려되는 등 경제전반이 총체적 난국에 빠져들고 있어 매우 걱정스럽다.

이같은 문제는 한마디로 전근대적인 정치행태 때문이다. 사실 정치권의 검은 돈거래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자유당 이래 수 십년간 관례화, 상식화되어오며 한국정치의 상징적 치부로 군림해왔다. 정치권은 선거때만 되면 으레 각 기업들에 유·무형의 압력을 가해 돈을 거둬갔고, 기업인들 또한 자기보호를 위해 무리하게 비자금을 조성해 건네줬다. 그러나 이같은 구각(舊殼)은 결국 경제의 부조리와 파탄을 불러오고 기업 및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주범이 되어왔다.

문제는 돈쓰는 정치에 근본원인이 있다. 고비용 정치구조에 기업이 뒷돈을 대는 악순환의 고리가 계속되면 참다운 정치가 사라지고, 경제 또한 왜곡될 수밖에 없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이제부터라도 돈 안쓰는 정치를 통해 투명한 정치를 실현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정치권은 돈을 갖다쓰고 기업의 뒤를 봐주는 부끄러운 악순환을 과감하게 끊어야 한다. 지금처럼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의 여론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개혁하지 못한다면 다시는 이같은 절호의 기회가 안올지 모른다. 돈 안쓰는 정치를 실현하는 것만이 정치는 물론 기업도 살리고 나라경제도 살리는 길이다. 돈 안쓰는 정치개혁은 그래서 지금 경제인을 비롯한 모든 국민의 최대 관심사이자 나라의 사활이 걸린 중차대한 과제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돈 안쓰는 정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경제인으로서 정치를 잘 모르지만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돈먹는 하마'인 지구당제를 폐지하고 선거공영제 도입, 정치자금의 수표·신용카드 사용 의무화, 선거구제 개선 등에 적극 공감한다. 또한 정치자금의 수입과 지출을 선관위에 등록한 단일계좌만 사용토록 하고, 일정금액 이상 기부자의 신상공개를 의무화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제도의 개선만이 근본적으로 정치자금의 수요를 감소시켜 더 이상 불법자금에 손내밀지 않아도 되는 정치환경을 만들 것이다.

하지만 최근 정치권 일각에선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여론의 압박에 밀려 정치개혁을 논의하고 있지만 여야가 약속한 지구당제 폐지만해도 '연락사무소'로 명칭만 바꾸고 내용은 그대로 갈 기미를 보이고 있다. 간판만 보신탕집을 영양탕집으로 바꿔 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선거가 임박, 또 다시 당리당략에 의해 적당히 타협하고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지금의 정치개혁은 국운이 걸린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여야가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며 대승적 차원에서 합의를 이뤄내야 정치와 경제, 나아가 나라를 모두 살릴 수 있다.

이제 관건은 강한 실천의지다. 국민들은 이번이야말로 정치개혁을 이루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이러한 정치쇄신의 기회가 안올지도 모른다. 대통령도 '작심'하고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추진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개혁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이룩한다면 역사에 남을 커다란 공적이 될 것이다.

돈 안쓰는 정치의 실현이 국가정치경제발전의 요체라는 것을 시대적, 역사적 소명으로 인식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 신바람나는 정치를 만들어주길 간곡히 촉구한다. /문병대(경기도경제단체연합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