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도시에는 문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위성도시에 살지만 직장도 서울에 있고 친구도 거기에 있다. 주말이 아니면 가족과 갖는 시간도 별로 없다. 그러니 이웃과 얘기를 나누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러다 보니 자신의 환경에 대한 성찰이 없을 수밖에 없고, 자신감이 결여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서울 사람들은 어떨까? 그들도 마찬가지로, 문화란 런던이나 파리에 있고 서울에는 없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우리가 겸손한 탓일까, 아니면 무지한 탓일까. 우리는 지방에서도 우수한 예술활동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서울에만 우수한 문화활동이 있다고 믿는 것은 실은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고, 이 환상은 실체가 없는 것이다. 요즘의 서울문화를 보면 상업자본과 행정이 짜고 앉아서 지방의 가능성을 으깨고 있다. 그것을 누가 하는 짓이냐 하면 그 역시 실체가 없고 현대의 속성이라 할 메커니즘 그 자체라고 보아야할지 모른다.
현대의 인간들은 자신의 오감(五感)에 의해 지각하고 행동하던 시대를 상실하였다. 이 사회와 집단은 자신이 만들어낸 전기 석유 원자력 등의 비인간적 에너지로부터 지배받고 있다. 현대의 조건들이 만들어낸 이 거대한 관리 시스템은 인간들을 더욱 자기 지배 하에 구속한다. 그 대신 현대인들은 풍요한 물질적 부를 얻었다. 개인들은 공권(公權)의 간섭을 예전처럼 받지 않는다. 사권(私權)은 최대한 보장된다. 그러나 우리들이 잃은 것은 얼마나 큰가?
대기오염, 공해, 환경파괴, 도시화…. 이것들은 우리의 어머니라 할 자연과 고향이라 할 공동체로부터 인간을 절연하였다. 그리고 우리들을 조직에 순응하도록 만들었다.
우리는 현대생활 속에서 때때로 우리 영혼의 목마름을 느낀다. 초조하고 불안하다. 정박할 항구가 없는 배처럼 방황한다. 끝없는 절망과 채워질 수 없는 욕망으로 괴로워한다. 이럴 때 어떤 이들은 관리사회(管理社會)에서 상실한 인간관계의 회복을 꿈꾼다. 연극은 인간과 인간이 알몸으로 부딪치면서 자연과 고향의 정서를 공유하게 하는 특성이 있다. 연극은 인간을 냉엄한 관리·조직사회에서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도 있다. 이즈음 우리 사회에 불기 시작한 공연예술에 대한 관심이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역할을 담당할 고질(高質)의 예술작품을 쉽사리 만나볼 수 없다는 데에 있는 것이다.
경기도에는 좋은 공연장이 상당히 있다. 거기에서 좋은 공연물이 끊임없이 제공된다면 이보다 더 좋은 문화의 복지가 어느 땅에서 가능할 것인가? 이 공연장에서 충분히 볼만한 작품들이 생산되는 것은 행정가와 지방 의회의 이해와 결심에 따라 가능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한국사회는 한 개인이나 사적 집단이 예술적으로 뿐 아니라 경영적으로 자립하기에는 지극히 어렵다. 그 이유의 첫째는 우리도 이미 강력한 관리사회에 진입되어 있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사적 엔터프라이즈로서는 공연예술계가 상업화의 길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공립 예술 단체장들을 공모 등의 방법으로 뽑는 민주적 절차를 도입하였다고는 하나, 확실히 말하면 제도상의 문제라기보다 시행상의 미숙으로 인하여, 올바른 운영을 꾀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의 예술단체 노조화 경향도 그런 현상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에는 30~40년 연극을 해오면서 명성과 신뢰를 쌓았으면서도 그에 못지 않게 금전적 손실과 빚으로 고통받는 연극인들이 다수 있다. 그것이 우리의 객관적 조건이다. 그들을 초빙해서 마음껏 예술적 이상을 펼치게 한다면 지금과 같은 외화내빈의 현실은 타개될 수 있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김의경(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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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0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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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19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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