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일, 서울세종문화회관의 재개관 페스티벌의 오프닝 콘서트가 있었다. 1978년 개관한 이래 26년 만에 새 단장을 하고 우리 앞에 자태를 드러낸 것이다. 오프닝 콘서트는 전체 프로그램의 일부로서 조촐히 꾸며졌다. '조촐히'라고 굳이 표현하는 것은 이 프로그램이 나에게는 너무 초라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로비는 지나치게 우리들의 시선을 산만하게 한다. 그 천장의 빛깔이며 여러 가지 세팅이 사람들의 정서를 안정되게 보듬어주는 맛이 없었다. 더구나 로비의 한 부분을 크게 차지하고 있는 식당이 눈에 거슬린다. 세종의 로비는 결코 크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데 그 공간의 3분의 1 가량을, 그것도 제법 호사하게 꾸며놓았다.
 
외국의 예에서 보듯이, 공연장은 식당이 아닐 뿐 아니라 그 메인 로비에 식당이 있어야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세종의 지하층은 지금 그 일부만을 주차장으로 이용하고 있는데, 사실 이 거대한 지하공간이야말로 식당을 포함한 여러 가지 편의시설을 위해 더없이 좋은 장소이다. 동경 제국극장의 지하 1, 2층은 식당가(街)이다. 일식, 양식, 중국식에다가 비싼 고급레스토랑이 있는가 하면 우동 만두로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간이식당도 있어서 관객들은 주머니 사정과 취향에 따라 식사를 한다.
 
보통 이른 저녁에 개막을 하고 제1부가 끝나면 25분, 30분 정도의 여유를 주어 식당으로 가게 한다. 브로드웨이의 극장들은 더 인색하다. 관객들은 지하로 내려가 커피나 샌드위치, 아니면 맥주나 위스키 한잔으로 목을 추기는 것이다. 술이 좋아 더 마시고 싶어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위스키를 다시 한잔 시켜먹을라치면 불이 번쩍번쩍하면서 속개 시간을 알린다. 연극이 다시 시작되면 이 간이 카운터는 영업을 중지한다. 세종의 지하공간을 지금이라도 개발한다면 어쩌면 또 하나의 명소가 될는지도 모른다.
 
객석에 들어섰다. 멋진 메인 커튼(面幕)이 우리를 맞는다. 그러나 그 감탄도 잠시이다. 면막 중앙 하단에 스폰서의 마크가 커다랗게 새겨져 있다. 그렇게 크게 협찬자의 이름을 새겨야했을까? 오히려, 누가 이렇게 호사스런 면막을 제공했을까 하고 우리의 궁금증을 자극했다면 아마도 우리는 감격했을 것이다.
 
이 마크의 위력은 프로그램이 시작하고서 곧 나타났다. 막이 열리지 않은 채 오케스트라 피트에 실린 삼고무 '세종의 대울림'의 무용팀이 등장하고 있었다. '개막' 프로그램의, 그것도 '서두'를, 막도 열지 않고 시작한다는 것은 극장의 규칙을 모르고서 하는 일이다. 프로듀서는 순서의 진행을 민첩하게 한다는 것만 생각하고, 첫 손님에게 개장(改裝)무대를 보여준다는 것은 잊어버린 것이다.
 
다음의 순서 시립국악관현악단의 '신 모듬' 때에 막을 열지 않았느냐 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극장의 논리에 맞지 않는다. 이것은 아주 작은 일이다, 전체를 보라고 할는지 모른다. 우리는 이미 전문시대에 들어와 있다. 전문가라면 최소한 면막 앞에 걸개 그림이라도 드리웠어야할 일이다.
 
페스티벌 내용을 보면 외국의 초청작품이 눈에 띄고 다음에 음악 프로그램의 비중이 큰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빠져있다. 한국 공연예술의 현주소를 자랑하는 창작품이 없는 것이다. 1년여의 극장 개보수를 하는 동안 세종의 프로듀서는 무엇을 생각했고, 소속 예술단체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외국의 공연들은 우수하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안이한 대책이었다. 우리 예술가들의 활력과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재개관 페스티벌은 아무래도 후한 점수를 얻지는 못할 것 같아 안쓰럽다. /김의경(극작가·공연문화산업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