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이 실시한 한국사람들의 휴가와 관련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2%가 여름휴가 계획이 없다고 답변한 바 있다. '경비 부담'과 '시간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경기가 워낙 좋지 않다고들 하고, 노동중심의 생활에 절어 사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지난 주말은 올 여름 최대 인파가 휴가를 가기위해 서울을 빠져 나갔다. 10년만의 더위가 돈과 시간 없음을 아랑곳하지 않게 만들어 사람들을 휴가지로 내몬 것일까? 이런 현상이 어찌 서울만의 일이랴. 여름이면 전국 곳곳이 휴가행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제는 휴가행렬도 추석, 설과 더불어 민족 대이동 수준에 다다른 것 같다.
다소 비판적인 입장에서 휴가문화를 거론하는 것은 더위를 피해 모처럼의 휴식을 취하겠다는 소박한 피서행렬을 타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과소비, 휴가지에서의 반환경적 태도 등 우리 휴가문화에서 나타나는 비문화적인 태도를 반성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비롯된다.
앞서 언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평균 휴가 경비가 43만원이라고 하는데 이는 99년 조사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또 해외여행도 갈수록 늘어난다고 한다. 이쯤되면 IMF보다도 경제가 어렵다는 얘기는 엄살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소비가 늘었다거나 해외여행 그 자체에 있지만은 않다. 흔히 하는 말로 적절한 소비는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비의 성격이고 양태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남을 지나치게 의식해 쓸데 없는 소비, 무분별한 해외여행이 난무하고 있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 곳은 쓰레기가 쌓여 금수강산이 몸살을 앓고 있다. 따라서 이런 휴가문화는 자연은 물론이고, 휴가를 즐기는 사람에게까지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 이는 휴가가 아니라 상극의 몸부림일 뿐이다.
사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휴가가 필요하다. 최근 주5일제 도입을 계기로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너무 놀아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이는 노동의 양을 중시하는 사용자의 어리석은 생각일 뿐이다. 21세기는 지식산업사회라고 일컬어지듯 향후 경제의 핵심적 경쟁 요소는 지식과 문화이다. 그런데 지식과 문화는 양이 아니라 질, 즉 창의성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며 창의력은 휴식을 통해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올바른 휴식, 즉 잘 노는 것은 개인과 사회발전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그런데 이렇듯 소중한 휴식을 과도한 소비욕망에 사로잡혀 쓸데없이 낭비해서야 되겠는가.
프랑스는 주5일 35시간 근무, 연간 5주의 유급 휴가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는데다 연차, 공휴일, 주휴일 등을 총망라하여 1년 가운데 145일이 휴일이라고 한다. 직장인들에게는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더욱 부러운 것은 휴가를 문화 체험과 밀접히 연관시키는 그들의 휴가문화인 것 같다. 프랑스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문화체험은 도시 탐방, 문화유산 방문, 축제 참가, 박물관 탐방 등이라고 한다. 프랑스인들에게 휴가는 평소에 할 수 없었던 활동과 휴식을 통해 인생의 또 다른 가치를 발견하게 하는 창조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근래들어 우리 사회도 자연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커지고 있다. 휴가 양태도 단순하게 먹고 마시는 스트레스 해소형 휴가, 볼거리 중심의 휴가방식에서 문화체험, 생태탐방, 스포츠활동 등으로 다변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휴가문화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키기에는 아직 미약한 수준이다. 변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람들 스스로 생산적인 휴가활동을 만들어 가려는 인식의 전환과 삶에 대한 개인의 성찰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한편으로 정부, 지자체 등 공공기관은 소비를 자극하는 저열한 방식의 관광지 개발 대신 자연친화적 관광기반시설을 마련하는 등 휴가문화 전환을 위한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지금종(문화연대 사무총장)
휴가문화를 생각한다
입력 2004-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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