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로 달려가는 뱀
입력 2005-07-11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5-07-11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
여당 당의장이 재래시장을 찾았다. 민생을 체험해 서민들의 어려움을 파악하겠다는 의도였지만, 상인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들은 그들을 찾은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하기 보다는 쓴소리를 내뱉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연정이니 뭐니 하는 게 무슨 소리냐”, “LPG 승합차 세금이 3만원에서 15만원으로, ℓ당 LPG 가격은 300원대에서 두 배 이상 올랐다. 이런 세금이 다 어디에 쓰이느냐”는 볼멘소리 뿐이었다.
어디 이 뿐이겠는가. 이곳 저곳 도로에는 붉은 띠를 두른 노조원들의 거친 함성이 전국을 찌른다. 2008학년도 대입전형방식을 놓고 정부와 대학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한 지붕 밑에 함께 살아야 할 사람들이 미소를 잃어버린 세상, 그 끝은 어디일까. 함께 살아야 할 이 땅에 '너’와 '나’는 상생이 아닌 투쟁과 타도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이젠 무엇이 머리이고, 무엇이 꼬리인지 모르는 혼돈의 삶 한 가운데에 서서 내 코를 베어갈 적들을 경계하며 칼을 갈고 있다.
'백유경'에 이런 우화가 있다. 숲 속에 뱀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뱀의 꼬리가 머리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내가 앞장서야겠다.” 그러자 머리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다. “언제나 내가 앞서 갔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슨 소리냐” 그리고는 다시 앞서 나간다. 그러자 꼬리는 심술이 나서 나무에 몸을 칭칭 감아 버렸다. 머리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게 됐다. 하는 수 없이 꼬리를 앞세워 간다. 그러나 꼬리는 제멋대로 가다가 길을 잘못들어 불구덩이에 떨어져 타죽고 말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큰 중병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정녕 그들은 자신이 병에 걸린 줄을 모르고 산다. 그 병은 다름 아닌 '내가 왕이다’라는 착각증이다. 여소야대의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궁색한 말에 대해 지난 1년간 여대야소의 상황에서 제대로 된 정치로 세상의 갈등을 능숙하게 치유해 왔는지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의 말대로 여기저기서 발목을 잡아 '대통령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다’라는 그의 말도 곱씹어 봐야 한다.
왕이 스님에게 묻는다. “스님들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수행하십니까.” “우리는 '이 괴로움은 사라지고 저 괴로움은 생기지 말아주기를’ 바라는 소원 때문에 수행합니다.” “그렇다면 스님은 미래의 괴로움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 존재하지도 않는 괴로움을 버리기 위해 노력합니까.” 이때 스님은 이렇게 비유를 들어 답한다. “대왕은 적군의 침략을 받은 다음에야 참호를 파고 보루를 쌓고 양곡을 마련하십니까.” “아닙니다. 그런 일은 미리 준비해 두었습니다.” “어떤 목적 때문에 그렇게 하였습니까.” “미래의 위험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다면 미래의 위험이 지금 존재합니까.”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왕은 지금 존재하지도 않는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그런 일을 하였습니다. 참으로 현명하십니다.”
꼬리로 달려가는 뱀의 미래는 불바다에 떨어져 죽는 것 뿐이다. 지금 이 사회에 존재하는 갖가지 갈등의 저변에는 늘 앞에 있고 싶은 머리와 머리의 자리를 탐하는 꼬리가 고약하게 얽혀있다. 머리는 머리대로, 꼬리는 꼬리대로 자신들의 방식만이 국민들의 안녕과 평안을 보장할 수 있다는 명분 아래 곳곳에서 탐욕의 삿대질을 서로에게 해대고 있다.
그러나 지금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위험을 물리치기 위해 땅을 파두고 보루를 쌓아야 하는 것이 오늘 머리와 꼬리가 할 일이다. 이제 머리는 머리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꼬리도 꼬리의 역할에 성실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국회에서, 길거리에서 비싼 마이크를 들고 '나의 길만이 옳은 길’이라고 외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서민들은 오른 집값만큼의 설움과 좌절감의 눈물을 흘리며 하루하루 희망의 미소를 잃어가고 있다.
/최원영(극단 십년후 대표)
-
투표진행중 2024-11-18 종료
경기도는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역점사업이자 도민들의 관심이 집중돼 온 경기국제공항 건설 후보지를 '화성시·평택시·이천시'로 발표했습니다. 어디에 건설되길 바라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