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년 동안 ‘어린이문학’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소득 수준 향상과 고학력 부모 세대의 등장에 따른 교육열이 어린이책 열풍을 주도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유수 출판사들의 매출 구조를 보면 ‘아이들’(=어린이책)이 ‘어른’(=성인책)을 먹여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어린이책 붐 현상은 무엇보다 초등학생과 청소년을 위한 ‘권장도서 목록’과 같은 교육제도적 측면에서 적잖은 기여를 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 세대에 걸맞는 독서교육이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최근 독서교육은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우려를 감출 수 없다. 이른바 ‘권장도서 목록’이라는 이름의 강요된 독서교육이 아무런 문제제기 없이 일방적으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주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일선 학교 현장에서는 ‘독서 이력철’이라는 이름의 독서 기록장을 작성하도록 지시하는가 하면, 권장도서 목록의 책을 얼마나 충실히 읽었는지 테스트하는 ‘독서능력 시험’이라는 이름의 자격 시험이 특정 독서교육단체에 의해서 실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탓일까. 입학 전부터 책읽기를 좋아하던 초등학교 2학년 필자의 아이 역시 적잖은 ‘독서 스트레스’를 호소하곤 한다. 한 마디로 말해 요즘 아이들은 무슨 의무방어전이라도 치르는 양 책읽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작금의 권장도서 목록이 과연 믿고 따를 만한 가치지향을 담아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예전에 비해 사정은 훨씬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현행 권장도서 목록 작성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국민(國民)’으로 훈육하려는 교육-기계 시스템의 기획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판단이 앞선다. 미국과 유럽 등 제1세계 위주의 도서 선정 문제를 비롯해 경험의 폭이 매우 협소한 학교 동화류의 동심천사주의적 관념을 유포하는 도서 선정이 큰 흐름을 형성하는 것도 문제다. 한 마디로 말해 ‘계몽’의 정치효과는 있지만, ‘발견의 즐거움’을 스스로 깨우치도록 하는 창의적 독서교육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변화하는 시대의 패러다임에 걸맞는 체계적인 책읽기 교육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시험’ 혹은 독서이력철이라는 형식으로 책읽기를 강요하는 식의 독서교육은 오히려 독(毒)이 될 수밖에 없다. 이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평생독서가 가능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린이책(문학) 작가들과 출판사들이 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광복 60주년을 기념해 출간된 몇몇 어린이책을 살펴본 적이 있는데, 필자가 어린 시절에 접한 인물과 역사 중심의 뻔한 위인전류에서 한치도 벗어나 있지 못했다. 이순신 장군 혹은 독립운동가 신채호 선생이 위대하다고 마냥 강조할 것이 아니라, 지금-여기 아이들에게 어떤 측면에서 이순신 장군과 신채호 선생의 삶을 이해시켜야 할지에 대한 시선 전환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 시선 전환의 방향은 다른 무엇보다도 자신을 상대화하고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다문화 시대를 사는 지혜를 몸소 느낄 수 있는 관점에서 재미있게 씌어져야 한다고 본다.

 지난 주말에 아시아문화네트워크가 주최한 중국,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네팔, 몽골, 방글라데시, 인도, 태국, 필리핀 등 아시아 각국의 젊은이 80여 명과 함께 한국문화를 체험하는 행사에 참여했다. 외국인 유학생과 이주 노동자들은 사찰 개심사를 둘러보고 사물놀이, 떡메치기, 탁본 실습 등을 재미있고 진지하게 했다. 나라와 언어는 비록 다르지만, 스스럼 없이 말과 말이 섞이면서 마음을 열고(開心, open mind) 다문화의 향연을 즐겁게 나누었다. 이런 문화교류는 앞으로도 더 활발해질 것이고, 그런 만큼 다문화 시대를 더불어 호흡할 수 있는 책읽기와 문화체험 교육의 방향 전환이 시급히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고영직(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