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바오라는 도시를 아시나요?” 10년 전만 해도 이런 질문을 하면 국내에서는 물론 미국 또는 유럽의 이른바 문화 선진국에서도 스페인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런 도시가 있습니까?”라는 반문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많이 달라져 이제는 “빌바오를 아시나요?”가 아니라 “혹, 빌바오를 다녀오셨습니까?”라고 묻게끔 되었다.
스페인 북부 바스크에 있는 작은 도시 빌바오가 오늘날 어떻게 '세계적인 문화 도시’로 변신할 수 있었을까. 그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바스크는 15세기 이후 스페인의 강대한 국력에 힘입어 철강산업이 발전한 곳이다. 그러다 1980년대에 몰아닥친 철강산업의 사양화로 경제가 침체되고, 여기에 바스크 지역분리주의자들의 계속되는 테러로 혼란이 가중되었다. 이에 빌바오 지방정부는 경제 회생의 실마리를 문화관광산업에서 찾기로 했다. 빌바오에 세계에서 으뜸가는 미술관을 유치하기로 한 것이다. 빌바오 시(市)는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측과 접촉해 '구겐하임 별관(別館)' 개념의 미술관을 빌바오에 세워줄 것을 제의했다. 그리고 미술관 건축에 따른 모든 재정은 빌바오시가 부담하고, 작품의 설치 및 유지 관리는 구겐하임측이 책임지기로 했다. 디지털 시대의 공업산업 구조에서 비롯된 문제를 문화산업이라는 아날로그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겠다는 그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구겐하임은 무엇이 아쉬워 빌바오의 제안에 흥미를 가졌을까? 구겐하임 재단은 오래전부터 세계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구입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보니 수집한 작품의 양이 넘쳐 적절한 '수장'(收藏) 관리가 큰 문제점으로 대두됐다. 예를 들어 미국 출신 미니멀리즘 작가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1939~)의 강철판 조형물인 '뱀'(snake) 같은 초대형(4×31×6.8m)작품은 관리하는 데 큰 어려움이 따른다. 웬만큼 큰 공간을 가지지 않는 한 엄청난 물량의 작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빌바오의 제안은 수장 작품의 관리라는 측면에서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었다. 그 결과 1991년, 미국의 세계적인 건축예술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 1930~)가 설계에 들어갔고 1993년 공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1997년, 거대한 미술 조각품과도 같은 건축물, 이른바 20세기 건축예술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다는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이 탄생하였다. 건물의 외형은 거대한 꽃봉오리가 피어나는 듯한 형상이고, 외벽은 티타늄 조각판으로 마치 물고기 비늘을 연상케 하는데, 태양광의 반사 각도에 따라 그 색조가 변해 보는 이의 마음을 황홀하게 만든다.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에게 또 하나의 '찾아가야 할 미술관’이 스페인 북부의 조그만 마을에 생긴 것이다.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은 개관한 지 10년도 안 되어 세계적인 명소로 자리잡았다. 구겐하임 소장품들 중에서도 현대미술을 이끄는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1923~1997), 클레이즈 올덴버그(Claes Oldenburg, 1929~), 리처드 세라 같은 뛰어난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됐으니 내실 있는 미술관으로서의 '관중 흡입력’도 물론 있겠지만, 아마도 미술관 특유의 건축 예술품을 보러 그 먼 곳을 찾아가는 것이라는 게 많은 미술 애호가들의 생각이다.
빌바오 지방정부는 당시 1억 달러라는 거액을 미술관 프로젝트에 과감히 투자했다. 하지만 미술관 개관 이래 해마다 100만명에 이르는 방문객이 세계 도처에서 몰려와 지난해까지 6년간 약 15억 달러(1조5천억원)의 경제 효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미술관이 지역 경제에 기여했다는 사실 말고도 빌바오 시가 문화산업을 통해 일약 세계 문화인들의 사랑을 받는 문화 중심지로 변모했다는 점은 문화 정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때늦은 감은 있지만 우리 인천경제자유지역에 구겐하임미술관을 유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수집한 작품들의 수장 관리 문제가 비단 구겐하임 재단만의 문제가 아닐진대 우리 인천도 빌바오의 예를 거울삼아 보면 좋지 않을까 싶다. 아늑함보다는 삭막하다는 인상을 주는 인천의 생활환경에 문화의 향기를 심어보자.
〈이성낙 가천의대 총장〉
빌바오를 보면서 인천을 생각한다
입력 2005-12-05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5-12-05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
-
투표진행중 2024-11-22 종료
법원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벌금 100만원 이상의 유죄가 최종 확정된다면 국회의원직을 잃고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없게 됩니다. 법원 판결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