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에서는 문화와 예술을 다루는 전문가들은 '오피니언 리더(Opinion Leader)'로서 그 사회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다. 그들은 주위의 많은 부정과 관련된 유혹을 물리치고, 도덕적으로도 잘 극복되어진 위상과 더불어 사회에 대한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 건축가들 또한 그 영역에 서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건축설계의 결함으로 인해 빚어진 건축물의 구조적 안전문제 사건이 일본열도를 충격에 몰아넣었다. 일본은 특성상 건축물 구조를 내진설계의 건축법에 맞춰 설계하도록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설계사무소가 의도적으로 법적기준에 미달되는 설계를 통해 불법 건축물들을 완공한 사실이 발각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일본에서 건축가 위상과 신뢰도가 급락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건의 발단은 개발회사가 공사단가를 저렴하게 해 분양가를 낮춤으로써 분양과 수주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 내진설계의 구조상 법적 안전기준에 미달하는 설계를 강요하고, 건축가는 계속되는 설계를 위해 개발업자의 강요에 굴복, 아파트 호텔 등 수십 개 건물을 짓게 된 것이다. 물론 저렴한 공사비와 분양가 덕분에 이 아파트와 호텔 등은 인기리에 분양돼 이미 사용되어지고 있었다. 이 같은 설계 및 공사 과정의 부정사실이 밝혀지면서 급기야 수십 개의 아파트, 호텔 등은 사용중지명령을 받아 구조보강공사를 다시 시작하게 됐고, 이로인해 거주자들은 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게 됐다.
이 사건은 일본사회의 도덕성과 안전불감증에 대한 신호라 할 수 있다. 단순하게 보면 한 건축가의 치부로 여겨지겠지만 사실은 개발회사, 건축가, 허가주무부서 등의 일련의 사회적 시스템의 도덕적 상실이 빛어 낸 사회시스템의 종합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불행중 다행인 것은 건축물이 지진 등의 재난이 닥쳐 붕괴되기 전에 알게 돼 대형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접하면서 몇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났던 몇 건의 부실 건축물의 대형사고가 떠올려져 그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이번 일본의 사건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많다. 또 일본이 선진화하는 과정에서 범했던 오류를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그 하나가 바로 '사회적 도덕성(Social Moralitet)'이다. 한 사회에서의 보편적 관념과 국제사회에서의 보편성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가지지 못할 때 이러한 현상은 나타나게 되고, 자기중심의 병적 편집증세가 나타난다.
선진국은 경제적으로 국민소득이 2만~3만달러에 도달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인프라 망, 재난에 대비한 안전시스템, 문화·예술의 인프라 등이 구축되고, 정치의 선진화,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 시민 의식 구조의 선진화 등 사회 모든 분야가 균형을 갖추고 보편적 의식이 공유돼야만 가능한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사회의 재난에 대한 안전시스템'과 '의식 구조'이다. 우리는 화재, 건축물 붕괴, 태풍과 홍수 등 인적·자연적 재난을 매해 겪고 있을 정도로 재난 대비에 취약하다. 특히 사회적 재난이 발생하면 온갖 목소리로 완벽한 준비를 할 것처럼 하다가도 몇 개월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어버리고 만다.
이제라도 정부와 지자체는 같은 잘못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재난에 대해 꾸준하게 준비하고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사전 정비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또 재난이 일어났을 경우 국민의 감성에 호소해서 재원을 마련할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구축된 재난 시스템 속에서 미연에 방지하고, 어쩔 수 없는 재난이 일어났을 경우에도 구축되어진 시스템에 의해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에는 우리 시민들의 안전의식도 함께 존재해야 한다. 각각의 주어진 사회적 책임에 대해 도덕적 해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극복되지 못할 때는 우리사회의 선진화는 물론이고 사회적 재난에 대한 대비 마저도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 두 열(경희대 건축대학원 교수)
안전 불감증
입력 2006-03-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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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06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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