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는 '자유공원'이라는 오래된 공원이 있다. 한때 자유공원은 월미도, 송도유원지와 함께 인천을 상징하는 관광지였다. 말 많은 맥아더 동상이 있는 곳도 자유공원이다. 그러나 이 자유공원이 우리나라 최초의 공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 하다. 자유공원은 1883년 개항과 함께 설치되기 시작한 각국조계의 결과물로 '만국(萬國)공원'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하였다. 개항장은 중국조계, 일본조계지와 함께 서구 열강들의 각국조계가 설치되어 있던 곳이다. 원래는 응봉산, 오늘날의 자유공원 일대가 바로 개항장이다. 이곳에서 새로운 인천, 근대도시 인천이 탄생하였다.

자유공원은 그런 점에서 근대 인천을 상징하는 곳이다. 개항기에는 만국공원으로 불리며 식민도시 인천의 모습을 상징하는 여러 건축물과 조경시설이 들어섰다. 나중에 인천각으로 '리모델링'된 존스톤별장을 비롯해서 독일 무역회사 세창양행, 제물포구락부, 기상대, 테니스장 등이 들어섰다.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일본 신궁이 있던 동공원(東公園 지금의 인천여상 자리)과 비교하여 서공원(西公園·니시코엔)으로 불려졌다. 그러나 이 공원이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조성되었다고 해서 '그들’만의 공원이었던 것은 아니다. 여러 애국적인 지사(志士)들이 이곳에서 독립을 위한 의논을 하기도 했음이 이런저런 기록을 통해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식민지 시대 많은 문인, 예술인들은 이 공원에 와서 식민지 조선의 모더니즘을 상상하기도 했다. 요컨대 자유공원은 만국공원의 시대를 거쳐 서공원 시대조차도 이곳 인천사람들의 꿈과 애환을 담은 '공원’이었던 것이다.

해방이후 만국공원으로 다시 이름을 찾았지만 곧이어 터진 전쟁으로 인천각도 세창양행도 부서져버렸다. 전쟁 이후 맥아더 동상을 세우면서 이곳은 자유공원이라는 이름으로 개칭되었고 한때 신혼부부들의 단골 여행지로 꼽히기도 했다. 어릴 때 자유공원 근처에 살았던 나는 가끔 산책삼아 공원에 오르면 사진기사 아저씨들이 맥아더 동상 앞에서 신혼부부들을 상대로 사진 찍던 광경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수봉공원으로 옮겨져 곧 철거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는 어린이 놀이시설도 그때는 자유공원에 있었다. 한미수교 백주년 기념탑 일대가 어린이 놀이시설이었는데 어린이날만 되면 행락객들로 정말 만원을 이루던 곳이 그곳이다.

그때의 자유공원이 새롭게 만국공원으로 복원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한다. 인천시가 도심 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옛 건물들을 복원하고 이곳을 역사 문화공원으로 재 창안한다고 한다. 요코하마의 야마테코엔(山手公園)이나 고베의 이진칸(異人館)처럼 옛 식민의 기억을 주체적으로 다시 현재화하는 일은 뜻 깊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이 자유공원은 근처의 차이나타운과 어울리고 월미공원과 함께 함으로써 개항장 인천이 새로운 인천의 도심 공원으로 재탄생한다는 뜻에서 그 의미는 각별하다. 게다가 중구청 해안동 일대에 곧 조성될 미술문화공간(예촌)과 조응하고 인근의 뮤지엄마일(옛 건축물들을 소규모 박물관으로 리모델링하여 박물관을 집중 조성하는 사업)과 연계되어 이곳 일대가 인천의 새로운 문화중심, 역사문화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관광중심지로 자리 잡을 계획이라서 더욱 가슴 설레게 한다.

마침 그런 자유공원의 역사를 집중 조명하는 특별 기획전시가 인천문화재단 주관으로 인천종합문예회관 대전시실에서 4월 3일부터 개막될 예정이다. 이번 전시에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옛 만국공원과 그 주변의 모습을 담은 사진 자료들이 한꺼번에 발굴, 전시될 예정이다. 한때 인천의 랜드마크라고 불렸던 인천각의 근경(近景)과 내부 모습을 비롯해서 세창양행과 전쟁 이후 자유공원 시대의 여러 모습들도 만날 수 있다. 시민들이 소장하고 있는 자유공원에 대한 추억을 담은 사진전도 이벤트로 마련되어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가 자유공원의 재창안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현 식(인천문화재단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