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 동안 일산의 어느 천주교회에서는 조금 특별한 그림 전시회가 열렸다. 그 전시회는 발달장애 아이들의 작은 공동체인 ‘상록수 자활센터’가 아이들이 방과 후 프로그램으로 미술 시간에 그린 그림들을 모아 마련한 전시회였다. 지난 해 나는 우연한 기회에 이 공동체와 인연을 맺게 되어 이제는 한달에 한번씩 아이들 가족과 함께 미사를 드리고 있다. 그 시간을 통해 아이들의 맑은 영혼을 만나는 일이 내게는 큰 기쁨이고 즐거움이다.
지체장애, 시각장애 또는 청각장애는 이미 그 말에서 어떤 장애를 말하는지 금방 알 수 있지만 발달장애는 구체적으로 어떤 장애를 의미하는지 잘 모르는 분들이 있다. 지난해 최고의 영화로 꼽힌 '말아톤'의 주인공 초원이를 기억한다면 발달장애를 이해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영화 속의 초원이가 바로 발달장애(자폐)인이다.
전시된 그림을 둘러보는데 ‘도대체 저 그림은 무엇을 그렸을까?’하는 의문이 드는 추상화 같은 그림이 있는가하면, 너무 간단하고 단순하여 슬며시 웃음 짓게 되는 그림도 걸려 있었다. 그런데 사실적으로 소박하게 그린 그림도 단순히 어떤 사물을 표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그림을 통해 자신이 지니고 있는 내면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만약 내가 이 아이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십중팔구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걸려 있는 그림 한점 한점에는 발달장애 아이들이 어눌한 말투와 서투른 행동으로는 다 표현하지 못한 수많은 그들만의 이야기가 담겨 있음을….
한 그림 앞에 잠시 멈추어 서자 그 그림을 그린 아이의 어머니가 다가와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겠느냐고 물었다. 둥근 원 안에는 별 모양과 몇 가지의 과일 모양과 세모 조각들이 전부였다. 이리보고 저리보고 아무리 궁리를 해도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어 솔직하게 모르겠다고 대답하자, 그 어머니는 당신의 아이가 좋아하는 팥빙수를 그린 것이라고 말하고는 크게 웃었다. 어른은 팥빙수를 보면 팥과 어름 덩어리만을 보는데 반해, 이 아이들은 거기 담겨 있는 여러 가지 것들을 나름대로의 형상으로 만들어서 다시 보는 특별한 눈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장애인의 눈에는 사실적이고 단순하게 보이는 그림이라도 발달장애 아이들은 그림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그림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아이들의 마음이 되어 그들과 같은 눈높이로 바라보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리라.
소박하지만 진실한 이 전시회는 아이들에게 심리미술을 지도하는 한 봉사자 선생님의 헌신적인 노력과 아이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가능했다. 미술 선생님은 처음에는 자신감도 없고 그저 형태와 색깔만 모방하는 아이들에게 실망을 하기도 했지만 조금씩 자신들의 목소리와 내면을 표현하는 것을 보면서 이제는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상록수 자활센터의 책임을 맡은 어머니도 발달장애 아이들이 비장애 아이들보다 지적능력과 표현력은 부족하지만 사물을 바라보는 마음은 너무나 순수하고 아름답다고 한다. 당신의 아이들이 미술작업을 통해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사랑이 아니겠느냐는 말도 했다.
장애 아이를 둔 어머니들은 남들과 조금 다른 당신의 아이들도 제도권 안에서 똑같은 인격적인 대우를 받는 삶을 보장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남들이 지니고 있는 편견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아이들을 데리고 떳떳하게 외출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그래서 이곳 어머니들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들고자 결승점이 없는 ‘말아톤’을 열심히 달리고 있다.
나는 이 작은 전시회를 통해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시어처럼 아이들의 내면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로부터 순수하고 아름다운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배울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아이들의 순수하고 거짓 없는 마음의 표현이 각박한 세상 삶에 메말랐던 마음을 적시는 단비가 되었기를 바란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허물고 서로 겉으로 드러난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되 똑같은 인간으로서 지니고 있는 깊은 내면의 세계에 대한 이해와 존경심을 지닐 수 있기를 기도한다.
/류 해 욱(예수회 신부·시인)
조금 특별한 그림전
입력 2006-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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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19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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