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선지자 중 한 사람인 모세는 행동으로 놀라운 기적과 표적을 보였을 뿐 아니라 말로도 많은 교훈을 남겼다. 이에 반해 사무엘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말하기는 하였지만 행한 기적은 거의 없다. 또한 엘리야는 위대한 행동가였으면서도 성경에 남아있는 말은 거의 없다. 이 두 가지를 같이 구비한 사람은 오직 모세 뿐으로 그는 율법가요, 또한 정치가요, 위대한 민족 지도자였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노예 생활로부터 해방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데 40년이 걸렸다. 그리고 이제 약 두 달 후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되지만 죽음이 임박한 모세는 그곳에 갈 수가 없었다. 이에 모세는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의 교훈과 하나님의 공의를 가르친다. 이때 그의 말 중에 이스라엘 민족이 사용하는 비(Rain)의 종류가 나온다.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 연한 풀 위에 가는 비요, 채소 위에 단비로다.”(신32:2)
 
성경에 보면 비를 나타내는 히브리어는 많지 않다. 비를 표현하는 말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마타르'이고 , '스이림'은 이슬비를, '게셈'은 소나기를 나타낸다. 이외에도 늦은 비, 이른 비, 폭풍이나 폭우를 가리키는 말이 있기는 하다. 모세의 말 중에 '비'는 빗물이 하늘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보통 정도의 비를 말한다. '맺히는 이슬'은 안개가 대기를 감싸며 풀잎에 맺혀 촉촉하게 적셔 주는 상태를, '가는 비'는 머리카락처럼 실같이 가는 가랑비를, '단비'는 소나기와 같이 많이 내리는 비를 뜻한다.
 
각 민족마다 나름대로 비의 강도를 나타내는 말이 다르다. 앞에서와 같이 유태인들은 비의 종류를 4단계로 구분했지만 미국에서는 공식적으로 6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즉 직경이 0.2인치 보다 작은 경우를 이슬비, 이보다 클 때를 비로 구분한 후 각각 3개씩으로 다시 구분한 것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기록에 따르면 세종대왕 시절에 비를 여덟 단계로 구분하여 각각의 다른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보슬비라 부를 수 있는 미우(微雨)로부터, 세우(細雨), 소우(小雨), 하우(下雨), 취우(驟雨), 대우(大雨), 폭우(暴雨)등이다. 이밖에도 비를 소재로 전해 내려오는 온갖 시문(詩文)이나 풍류담 등을 접하다 보면 우리네 조상들은 다른 민족에 비해 비에 대한 감성이 풍부했던 것 같다.
 
현재 구전으로 전해지는 토속적인 우리말 비 이름도 무척이나 재미있다. 안개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를 '는개비', 겨우 먼지가 날리지 않을 정도로 비가 조금 오는 것을 '먼지잼비', 식물이 자라거나 가뭄이 해소되는데 꼭 필요한 달가운 비를 '달은 비'(甘雨)라고 하고, 모낼 무렵에 한목 오는 비를 '목비'라고 부른다. 또 한꺼번에 쏟아지는 비는 '모다기 비', 빗줄기가 굵고 거세게 퍼붓는 비는 '작달비', 내리다가 잠시 그치고 다시 내리는 비는 '웃비'라고 한다.
 
모세가 비의 비유를 통해 가르침을 말한 것은 건조한 사막과 스텝기후구에 속한 중동지역에서 비는 곧 축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삭막하고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가는 비', 건기인 여름철에 초목의 성장에 가장 필요한 '이슬비', 그리고 가뭄을 해소하는 '단비'는 그야말로 신의 축복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입춘 때 받은 빗물로 술을 빚어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전해내려오기도 한다. 예전에는 빗물을 받아 술을 빚거나 머리를 감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의 빗속에는 강한 산성물질과 함께 각종 공해물질이 섞여 내리기 때문에 비를 몸에 직접 맞는 것은 삼가야 한다. 빗물을 받아 술을 빚어 마시는 것은 더더욱 삼가야 한다. /반기성(대령·공군 기상전대 기상연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