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정년퇴임을 하신 대학은사님을 우연히 뵈었다. 이미 고희를 넘기셨지만 그 모습은 50대 초반의 중년신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삶의 연륜과 깊이에서 우러나온 평화롭고 단아한 모습을 함께 지니고 계셨다. 나는 웃으면서 예전과 다름없는 젊음을 지니시는 비결을 여쭈어 보았다. 그때 은사님의 답변은 뜻밖에도 자신이 젊어보이는 이유는 철없이 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선생님과 헤어진 뒤 나는 `살아가는 방식'으로서 이 말이 갖는 의미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그야말로 그것은 `명인의 명답'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보통 나이가 들어가면서 `철이 드는 것'을 바람직한 덕목으로 삼는다. 철이 들었다는 것은 사회가 개인에게 부여한 역할을 탈없이 해내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국가에 충(忠)을, 자식으로서 효(孝)를, 학생으로서 학(學)을, 남편으로서 가족부양을, 아내로서 자녀양육 등을 잘 해내는 것이다. 이러한 역할을 기존의 규범이 지시하는 대로 잘 해내지 못하면 그러한 사람에게는 철이 없다는 핀잔이 뒤따르고 심하면 제재가 가해진다. 그러기에 철이 든다는 것은 사회유지에 도움을 주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그만큼 주어진 규범을 이견없이 수동적으로 따라야만 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순응과 동조가 항상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철이 없다는 것은 기존의 규범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거부하는 측면이 있다. 그 절대성에 맹신하지 않고 기존의 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여유와 기존의 규범이 갖는 잘못을 지적해 줄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그러기에 어느 시대에서든 `철이 없다'고 핀잔을 받는 일은 그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개혁의 단초를 여는 것일 수도 있다.
지난 이십 년여에 걸쳐, 기존의 규범에 대한 전례없이 새롭고도 근본적인 질문들이 우리 사회 내부로부터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개인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이끌려온 삶의 방식을 의문시하고 더이상 참지 못하고, 자신들에게 오랫동안 부과돼온 규범들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더 이상 부모와 어른과 교사들의 말을 안 듣고 가정과 학교 안팎에서 이유가 있는 또는 이유 없는 반항을 하고 있고 직장에서는 전통적인 상사와 부하간 지시복종관계가 위협받고 있다. 여성들도 예외는 아니다. 여성들 역시 남성, 남편, 자식들과의 전통적 관계를 거부하면서 `제갈길'을 헤쳐나가기 시작했음을 요즘 70대 할머니들의 황혼이혼소송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심지어 동성애자들까지도 전통적 성적 정체성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떳떳이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흐름은 해방이후 별 변화가 없었던 권위주의적 정치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개혁성향의 소장파 국회의원들은 당론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거수기 역할을 하던 기존의 관행을 따르지 않고 사안에 따라 당론보다는 소신을 따라 자유롭게 표를 행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기존의 규범에 대한 도전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철없는 짓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철없는 짓은 실상 이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에 대한 개혁 및 대안추구의 과정이기도 하다. 기존의 틀에 맹목적으로 얽매이지 않고 보다 자유롭고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안간힘인 것이다. 이러한 철없는 짓이 한 인간을 나이로 늙을망정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게 하는 활력소가 될 수 있음을 나의 대학은사님은 그의 삶의 역정을 통해 보여주셨다. 철없이 산다는 것. 그것은 어찌보면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아름답고 때로는 거대한 바다를 끝내 이루고 마는 한줄기 시냇물일 수도 있다./김현희(한신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철이 없다는 것
입력 2000-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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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7-2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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