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중에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답방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지금의 남북관계는 지난해 6월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방문으로 과거에 생각할 수 없었던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북한은 어쩐지 움츠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개혁개방의 당위성을 인지하면서도 우선은 체제와 이념 쪽에 더 신경을 쓰는 듯하다. 한편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각은 여전히 의혹과 불확실성으로 가득차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일의 서울답방이 한반도에 무언가 새로운 국면을 여는 일대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문제는 김정일 위원장을 어떻게 맞이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그의 서울 답방이 역사적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서울에 와서 무엇을 보고 싶어하며 알고 싶어하는지, 또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무엇을 얻어내려 하는지를 똑똑히 알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 또한 그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똑바로 알려줘야 한다. 무엇을 보여줄 것이며,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그를 만나 똑바로 말해줘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북한의 진정한 개혁개방이며 군사적 긴장완화다. 정치 군사적 개혁은 자신들의 체제유지와 직결된 문제다. 그만큼 문제의 접근이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북한의 개혁개방이며 그 실질적 단초는 경제체제개혁이라 할 것이다.
 경제체제개혁의 핵심개념은 글로벌경제 지향이다. 우리는 지난 연초에 있었던 김정일 위원장의 상하이방문에서 북한의 변화가능성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서울방문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은 그에게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본질이자 그 징표인 시장을 보여주는 일이다. 시장경제의 힘에 대해 말하고 이해시키는 일이다.
 북한 사회주의 경제체제는 통치자의 경제다. 통치자의 절대적 권위에 힘입어 국민의 에너지를 총동원, 필요한 만큼 생산하고 생산한 만큼 분배하는 시스템이다. 북한식 사회주의와 주체사상에 의한 자립 자영의 원칙이 적용된다. 공장과 농장, 군부대 등 생산단위는 있으나 이윤추구가 없고 사유재산이 보장되지 않는다. 시장도 없고 상품의 자유로운 거래도 없다. 가격이나 경쟁의 개념이 없음으로 개혁이나 개방이란 말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러므로 그를 맞이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에게 자본주의 시장을 직접 체험케 하는 일이다. 포철과 삼성전자, 현대자동차를 보여줘 투자자가 없는 그들 체제의 맹점을 이해시키며 규모의 경제와 자본의 논리 및 효율성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게 해야 한다. 새마을 지도자와 테헤란로의 벤처기업인도 만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형쇼핑몰과 패션열풍을 돌아보게 하고 싶다.
 재래시장과 슈퍼마켓도 들러 가득히 진열된, 낭비로 보일지도 모를 수백, 수천가지의 상품들을 바라보며 자본주의가 살아숨쉬는 시장이 어떤 곳인가를 알게 되었으면 한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소비자들의 자유로운 선택,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더 잘살기 위해 경쟁하는 본연의 인간모습을 보기 바란다. 그리하여 20여년전 덩샤오핑(鄧小平)이 했던 남순강화(南巡講話)와 같은 김정일 위원장의 통큰 개혁개방선언이 서울에서 이뤄졌으면 한다. <서건일(중소기업연구원 상임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