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중국동포는 약 23만명. 이중 절반이상이 불법체류자이다. 밀입국자를 감안하면 실제로는 15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언제 추방될지 모르는 불안속에서 3D업종을 전전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 경제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지만 불법체류라는 굴레 때문에 고용주들의 횡포와 비인간 대우도 참아야 하고 억울함을 호소할 곳도 없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살고 있는 이들은 자칫 한국판 게토가 될지도 모른다.
이들의 희망은 하나다. 잘 사는 모국에서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 좀더 여유있게 사는 것이다. 하지만 모국의 가슴은 이들을 받아줄 만큼 넓지도, 따뜻하지도 않다. 법도 현실도 이들을 천대하는 쪽이다. 여권 비용 등 최소 1천만원 이상 빚을 지고 국내에 온 이들은 빚갚고 다시 돈을 벌려면 최소한 5년이 필요하다고 한다. 때문에 합법적으로 들어와서도 곧 불법체류하기가 일쑤다. 다시 돌아간 재중 동포중에서 코리안 드림이 악몽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이들의 소망을 들어주지 못할만큼 가난하고 작은 나라가 아니라면, 그것은 역사의식의 부재가 빚어낸 결과이다.
분단 동안 서독은 종전후 귀국하지 못하고 구소련을 비롯해서 동구 각국에 산재해 있던 해외동포를 귀국시키는데 모든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였다. 12만명의 동포를 데려오는 대가로 폴란드 정부에다 23억마르크를 지불하였고 루마니아에서는 1인당 1만마르크씩 계산해서 8만명을 불러왔다. 이렇게 해서 1989년까지 가족을 포함하여 서독으로 이주한 해외동포는 무려 150여만명이나 되었다. 독일판 탈애급기이다.
일제의 강제이주정책으로 갔다가 전쟁으로 귀국하지 못한 후예들이 재중 동포들이다. 하지만 주변국과의 마찰, 안보상의 불안, 노동시장 교란 등의 이유로 이들은 재미·재일 동포와 같은 법적 지위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중국동포를 포용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통일을 이룰 수 있겠느냐는 목소리에 정부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추방만이 능사가 아니라 인권·자유·관용의 얼굴을 보여줘야 할 때다.
불법입국은 엄격히 다루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그 실태와 원인을 조사하여 그들이 처한 현실에 눈을 돌려야 한다. 그리고 중국 동포인력이 얼마나 필요한지,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이들을 감당할 수 있는 지를 다각도로 검토해봐야 한다. 중국동포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현실적인 대안을 찾기 위해서이다.
우선 제도적으로 체류기회를 넓히고, 고용허가제를 도입하는 방안이 나와야 하겠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직업교육, 창업훈련 등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것은 한민족공동체를 지향하는 정부의 해외동포정책에도 부합되는 것이다.
재중동포는 역사의 희생자이며 분단의 사생아들이다. 이들은 잃어버린 국적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위하여 불법체류라는 어둠속에 살고 있다. 햇볕정책은 아니어도 달빛정책만이라도 베풀어 달라는 이들의 절규를 더 이상 외면할 수가 없다. 이들에게 고통과 천대를 안겨주는 모국을 우리는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중국동포들에게 더이상 고국(苦國)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법에만 맡기지 말고, 정치가 나서야 한다. 독일인과 같은 역사의식, 국가경영전략이 아쉽다. <이인석 (인천발전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