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영장이 떨어져 홍 검사가 성동구치소로 향하던 사진을 보았습니다. 먼 곳을 바라보는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빛이 피로에 젖었는지 수심이 가득 찬 것 같습니다. 어제까지 피의자를 떨게 하던, 사법정의를 위하여 온몸을 내던지던 홍 검사가 독직폭행의 공범자로 몰려 피의자 신세로 전락하다니. 사람팔자 알 수 없는가 봅니다.
수사과정에서 폭행이 어찌 홍 검사만이 있었겠습니까. 일제시대부터 내려 온 악습을 뿌리 뽑지 못하고 그대로 전수받아 공공연히 자행되던 폐습이 아니었던가요. 검찰출신 법조선배들은 살인사건의 수사과정에서 고문, 폭행이 왕이라고 무용담을 털어놓은 적이 있고 이를 경청하던 법조후배들은 있을 수 있는 일이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습니다. 결국 쉬쉬하면서 전해 내려온 악습이 이번에 곪아터진 것입니다.
경찰에선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때 한번 정리되어 수사과정이 한결 투명해졌다고 보여집니다. 종래 경찰수사는 가관이었습니다. 수사관이 어르고 윽박지르고 모멸감을 주고 자로 머리통을 때리고 발로 차고 수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 국가공권력에 시달리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피의자들은 자포자기하면서 검찰에 가서 밝히고 매를 덜기 위하여 수사관 입맛에 맞게 자백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피의자가 검찰에 와서 경찰과 다르게 진술하면 왜 다르게 진술하느냐고 방방 뛰고 피의자에게 다른 약점이 있으면 예컨대 절도 실형전과가 여러번 있어 보호감호청구도 형식적으로 가능한 사건이면 보호감호 붙인다고 위협하여 피의자는 주눅이 들어 법원에 가서 밝히자고 수사관이 요구하는 대로 자백합니다. 법원에 와서 재판과정에서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하면서 실체관계는 이러하다고 얘기하여도 근엄하신 재판장은 왜 경찰이나 검찰에서 자백했느냐고 다그치고 변호사에게 하소연해도 경찰에서 자백한 조서는 부인할 수 있지만 검찰에서 자백한 조서는 부인할 수 없고 증거로 사용되고 더구나 검찰에서 자백하고 법정에서 부인하면 형이 올라간다는 원칙론만 되풀이하니 피고인은 하소연할 데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이 수사 및 재판과정의 자화상입니다.
글쓴이도 현직에 있을 때 자백이 왕이라는 일념하에 피고인이 자백하면 형을 감하고 부인하면 형을 올리는 기계적 재판을 해왔던 과거가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과거이지만 당시에는 당연시 되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몇 년 전에 적부심재판정에 갔을 때 피의자가 온갖 군데 멍이 들어 고문당한 흔적이 역력하였습니다. 당시 누가 볼까 부끄러웠습니다. 글쓴이 사건이 아니라서 사건내용은 모르나 피의자는 석방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재판관행에 비추어 보면 당연한 결론이었습니다.
이젠 수사방식에 있어서 근본적인 제도개혁을 해야 합니다. 물고문이니 전기고문이니 일제시대 독립투사를 옥죄던 수사방식에서 벗어나 증거중심의 과학적 수사방식을 도입하여야 합니다. 열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억울한 사람은 한명이라도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어제까지 수사관행은 억울한 사람 한 두 명 나오더라도 열사람의 범인을 잡으면 장땡이다라는 원시적 수사기법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수사관의 의식개혁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수사관에 입문하여 형사소송법절차와 다르게 수사가 진행되어도 왜 다른가 의문 한번 품지 않고 선배 수사관의 수사방식을 그대로 전수받아 오늘날 이 모양이 된 것입니다.
검찰은 홍 검사의 희생을 계기로 수사제도를 확 바꾸어야 합니다. 구각을 깨고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수사시 변호사입회제도를 상설화하여 수사관 입맛대로 조서가 작성되는 것을 방지해야 합니다. 형사변론하다 보면 구속까지 가지 않아도 되는데 구속이 된 사건기록을 보면 수사관이 한쪽편을 들어 완전히 다른쪽을 흉악범으로 그려놓으니 영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소한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하여서도 수사과정에서 변호사입회제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또 수사에서 밀실이 왜 필요한가. 윽박지르겠다는 의도가 없는 것인지. 수사실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밤샘수사는 왜 필요한가. 수사관은 교대할 수 있지만 피의자는 밤샘수사를 받으면 체력이 소진하여 헛소리가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종래 악습을 타파해야 합니다.
구치소에서 온갖 상념에 빠져 있는 홍 검사여. 그대 한몸 던져 종래 수사관행의 구각이 깨뜨려진다면 수사제도발전의 한 단계를 업그레이드 시킨 것이 아닙니까. 과학적 수사기법을 도입하는데 살신성인하였다고 생각하소서. <강창웅 (대한변협부회장겸 수원회장)>강창웅>
오호 통재라, 홍 검사여!
입력 2002-12-18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2-12-18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
-
투표종료 2024-11-18 종료
경기도는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역점사업이자 도민들의 관심이 집중돼 온 경기국제공항 건설 후보지를 '화성시·평택시·이천시'로 발표했습니다. 어디에 건설되길 바라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