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 50년을 맞는 가운데 한미관계가 출렁거리고 있다. 여중생 추모 시위에다 북핵문제가 겹쳐 한쪽에서는 반미 감정이, 다른 한쪽에서는 반한 정서가 분출하면서 두 나라 사이에 예기치 않은 격랑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바로잡자고 요구하고, 미국인들은 '은혜도 모른다면서 차라리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라'고 감정섞인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한국의 포용정책이 도전으로 곡해되기도 한다. 게다가 이 같은 감정의 기류가 이제는 경제쪽으로 번지고 있어 적지 않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그렇지만 이를 두고 위기라고 말할 수는 없다. 분단을 극복하려는 한국과 분단을 관리하는 미국 사이에 잠복해있는 구조적 갈등이 분출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대북정책을 성공시키려면 적어도 두 개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하나는 교류 협력이고, 다른 하나는 군사적 신뢰구축이다. 전자는 이념의 장벽을 허무는 것으로서 남북한 당사자들이 직접 나서서 해야할 일이다. 후자는 무력포기 문제로서 여기에는 미국의 안보이익이 포함되어 있다. 즉,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려면 탈이념화와 탈군사화가 선결되어야 한다.
따라서 한국이 군사문제를 포함시켜 남북대화를 한 차원 높이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경제나 인적 교류만으로는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보문제에서 한미간 공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남북한이 평화협정이나 재래식 군축 문제를 다루려고 해도 미국이 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남북한 사이에 평화무드가 조성되면 자칫 주한미군 철수로 연결되지 않을까 염려해서다. 이처럼 한미간에는 주권과 안보가 부딪칠 가능성이 항상 잠복해 있는 상태다. 바로 이것이 한국이 안고 있는 딜레마이다. 반미, 반한 감정도 따지고 보면 그 원류는 여기에 있다.
한국은 이 같은 딜레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방법은 미국과의 결속을 다지면서, 주권의 폭을 넓혀 나가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 힘은 경제력과 외교역량에서 나온다. 물론 그 과정에서 때로는 실망한 연인들처럼 두 나라의 관계가 냉랭해지고, 흔들릴 수도 있다. 지금 한미간에 난기류가 흐르는 것도 이러한 과정의 하나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반미, 반한 기류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이를 소화하는 능력이다. 그렇게 해서 한국은 동맹의 틀 안에서 '안보는 필요한 만큼 의존하고, 주권은 가능한 만큼 확대'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동맹관계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동맹국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고강도 경제봉쇄에 한국도 동참하라고 할 때,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국익인지, 한국 국민들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숱한 고비를 넘기면서 닦아온 남북교류의 기반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궁지에 몰린 북한이 오히려 무력을 들고 나올 가능성도 생각해 봐야 한다. 지난 주 전격적으로 NPT 탈퇴를 선언하고 나온 북한의 돌발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전쟁의 상흔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한국인들에게 평화만큼 절박한 것은 없다.
한미 안보동맹은 더욱 다져야 한다. 그것은 정치·경제의 안보와도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양국의 국익이 전제되는 협력이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우선 한국은 통일독일에 여전히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미국 또한 강국도 파트너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파트너란 당당하게 제목소리를 낼 줄 아는 동반자를 말하는 것이다. 투정이나 응석을 부리던 시절의 한국과 달리 북미간의 대화를 중재할 만큼 성숙했고, 상대를 도울 실력도 어느 정도 갖추었다고 본다. 이제 한국은 과거의 미국을, 미국은 현재의 한국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반미와 반한을 넘어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켜 나가는 길이다. <이인석 (인천발전연구원장)>이인석>
反美와 反韓
입력 2003-0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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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1-15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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