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지난해 국민총생산과 1인당 국민소득이 각각 세계 13위와 54위에 올랐다.

대망의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선을 돌파한 1995년에 세계 34위였던 국민소득이 그 사이에 크게 떨어진 것이다.

국민총생산이 아무리 커지더라도 국민의 풍요함을 나타내는 1인당 국민소득이 3류국 정도에 그친다면 긍지를 갖기가 어렵다. 긍지는 둘째치고 국가와 국민 간의 심리적 거리가 멀어져서 국민통합도 어려워지게 된다.

때문에 국민총생산과 1인당 국민소득 사이의 간격을 하루라도 빨리 좁힐 필요가 있다.

더욱이 지금은 뚜렷한 국민적 과제가 없어 정부·기업·국민 모두가 목표 상실증에 빠져 있는 상태나 다름이 없다.

국민들의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고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새로운 국민적 과제 설정이 시급하다.

참여정부가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을 새로운 국정 과제로 내놓았다. 현재의 국민소득을 두 배로 늘리며 노화된 경제구조를 재생시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소득 배증에 앞서 먼저 이른바 ‘국민소득 1만달러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를 찾지 않으면 안 된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어서면 경제의 활력이 급속히 떨어지고 성장률이 낮아지는 소위 1만달러 함정은 구미 선진국들도 공통으로 경험한 것이다.1981년 1만달러 선을 넘어 선 일본은 6년 만에 다시 2만달러 고지에 도달했지만, 4년 동안 1만달러 선을 벗어나지 못했다.

유럽의 경기를 견인하는 기관차 역할을 하던 독일도 무려 7년을 잃어버렸다.

1만달러 선에 도달하자 고도성장을 이끈 성장의 원천과 성장 방식이 모두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제도·관행·사고방식 등 고도 성장기의 경제체질을 개혁함으로써 성장의 엔진은 다시 가동되었다.

1만달러의 함정에서 빠져 나온 후 일본은 2년, 독일은 4년 만에 2만달러 시대로 진입하였다.

국민소득 1만달러가 도약의 발판이 될지, 아니면 후퇴의 복병이 될지는 경제활동의 주역인 노동자·기업·정부의 협력 관계에 달려 있다. 경제 발전의 원동력은 이들 3자의 협력관계에서 나온다.

한 배에 타고 있는 이들 셋이 서로 반목하고 대립한다면 배는 침몰하게 된다. 3자의 협력이 있어야 배는 전진할 수 있다.

지금 한국은 노사정 관계가 커다란 위기를 맞고 있다. 노조는 과도한 임금인상 요구에다 경영에도 참여할 움직임이다.
협력보다는 대립, 합의보다는 갈등이 증폭되면서 노사관계는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게다가 대립 때마다 노와 사는 승자와 패자로 갈린다. 성숙사회로의 진입을 눈앞에 두고 구시대적 계급투쟁이 재현되고 있는 형국이다. 몇몇 노조 간부들에 의해 주식회사 한국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성장·일자리·미래 모두가 어둡다. 국민들에 희망을 주는 미래 비전은 어디에도 보이질 않는다.

이것이 8년 동안 1만달러 함정에 빠져 있는 한국의 현실이다. 그런데도 노조는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있으며 기업은 정리해고로 맞서려 하고 있다.

임금인상만큼 일자리가 줄어들면 생산성은 오르겠지만 실업이 늘고 성장은 둔화하게 된다. 이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무엇보다도 기업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힘차게 뛰도록 해야 한다.

새로운 성장산업 육성, 신기술 개발, 일자리 창출 등은 기업이 아니고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기업이 살아야 1만달러의 함정에서 탈출할 수 있고, 2만달러 고지에도 도달할 수 있다.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기업이 힘차게 뛸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정부도 노조도 힘을 합쳐야 한다.

정부는 기업과 노동자 사이에서 좌고우면을 하기보다 국가 경영자로서 실용의 자세를, 노동자는 기업가의 손을 잡아주는 용기를 보여야 할 때이다.
국민소득 배증은 노사정이 한 몸이 되어 추구해야할 국민적 과제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이인석(인천발전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