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부산에 다녀왔다. 벌써 두달 째 부산시청 앞에서 3천배를 올리고 있는 지율스님이 무기한 단식을 하겠다고 해서 말리러 간 것이다. 스님은 지난 2월 노무현 정권 출범 즈음에도 40여일간 단식을 하며, “천성산의 벌레가 살려달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고 일갈하셨다. 그러자 청와대는 급히 높은 사람을 부산에 보냈다. 새 정권이 출범하는 경사스러운 날에 한 고집쟁이 비구니 스님이 목숨을 잃는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스님이 단식을 멈추자 정부는 천성산을 관통하는 터널을 뚫어 고속전철을 놓고야말겠다고 발표했고, 스님은 “그렇다면 내 굶어죽은 뒤 산을 파괴하라”며 다시 단식선언을 하신 것이다.
당시 지율스님의 단식 시기를 조율하는 긴급 비상회의 때 만난 마산의 한 환경운동가에게 들은 이야기다. “만약, 매미가 추석 즈음에 오지 않았더라면 몇 천 명이 죽었을 겁니다. 상상하기도 끔찍합니다. 노무현정권, 운이 좋은 것 같아요.”
“노정권의 운이 아니지요.” 여기 대한민국이 무슨 입헌군주국인가 싶어 얼른 필자가 태풍피해는 정권의 운과 상관없다고 대꾸했다.
“그거야 그렇지요”라며 그가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얼마 전, 우리 산하를 강타한 태풍 매미가 처음 뭍에 상륙한 곳이 바로 마산이었다. 이번 경우에는 태풍이 마산 부산 강원도 해안지역 등 한반도의 중남부를 할퀴고 지나갔는데, 특히 마산의 피해가 가장 컸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 환경운동가의 이야기인즉슨, 추석이라 도심 지하상가가 빈 상태에서 태풍이 상륙했다는 것이다.
만약 명절이 아니었다면 상가내의 모든 사람들이 물에 잠겼거나 흘러들어온 원목더미에 처참하게 맞아 죽었을 것이라는, '일어나지 않은 끔찍한 일'에 대해 설명했다. 단 30분의 집중호우와 해일로 도시 전체가 처참하게 붕괴되었다고 한다.
태풍이 할퀴고 간 곳은 서둘러 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됐고, 늘 그래왔듯이 국민성금이 걷혀지고 있고, 굼뜨게나마 생필품이 배달되고 있다. 마땅하고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불황인데도 재해성금이 호황기 때보다 더 많이 걷히고 있다고 한다. 성질 급하고 목소리 크지만, 본래 가슴이 '뜨거운 민족'이라는 게 다시금 확인된다. 올해는 그 재해성금들이 '언제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성금을 모금한 매체를 통해 투명하게 발표되는 원년이기를 소망해본다.
그런데 “이것은 천재지변이다, 아니다 인재(人災)다”하는 소리는 여기저기에서 들리지만, 정작 나옴직한 보다 근원적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태풍과 같은 천재지변은 사람살이 이래 늘 있어왔기 때문일까. 분명 종전의 천재지변과 좀 다른 것은 못 느낄까. 널리 알려져 있듯이 유럽에는 이번 여름에 폭염으로 2만명이나 죽었다고 한다. 한반도는 아예 여름 내내 장마였다. 그러다가 매미가 할퀴고 지나가던 즈음, 미국의 워싱턴에도 토네이도가 강타를 했다. 전세계적인 기상이변 속에 우리 기후대도 속해 있었던 것이다.
근년의 기상이변은 무엇보다도 지구온난화 탓이라는 게 부정할 수 없는 속설이다. 지구온난화는 우리네 살림살이의 바탕이라 할 수 있는 석유화학 문명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즉, 이산화탄소 배출과 지구온난화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탱하던 기후엔진이 고장나 버리고 만 것이다. 편리하고 안락한 삶을 추구했고, 그 생활을 누린 대가치고는 기후변화의 규모와 그 파괴력이 너무 크고 깊다. 내년에는 어떤 형태의 기상이변을 맞이하게 될까. 정말 방법은 없을까. 우리네 살림살이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 필요한 때다./최성각(소설가·풀꽃평화연구소장)
'매미'는 우리가 불렀다
입력 2003-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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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25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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