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죽 같은 민주주의였다. 그 동안 우리 공화국의 이력에 나오는 모든 민주주의는 개가죽 같은 민주주의였다는 사실이 국회의사당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아무데도 쓸데없이 명색으로만 걸렸다가 금방이라도 찢겨져 버리고 마는. 공화국 수립 이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그리고… 칸막이 하나씩 차지한 대통령의 이름들이다.
이승만, 국민에게 총질까지 하다가 결국 쫓겨난 대통령이 되었다. 그에게 민족주의 세력은 암암리에 박멸 되었다. 박정희, 총 들고 나타나 청와대에 들어갔다. ‘황야의 건 맨’이 따로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떼지어 다녔다는 것. 그는 18년간 황야를 호령하다가 심복에게 결국 총 맞고 죽었다. 전두환, 역시 수많은 제 동포를 죽이면서 나타났다. 그는 지금도 '떵떵' '텅텅'거리면서 잘 살고 있다. 주머니에 이십 몇 만원이 전 재산이라고 호기까지 부리면서 산다. 노태우는 다 아시다시피 전두환의 후계자다. 거기에 그걸 이어받겠다고 자진해서 들러붙은 김영삼이 그 뒤를 잇다가 나라 경제를 외국인 손에 맡겨야 하는 치욕을 겪으며 임기가 끝났다.
이게 무슨 삼국지 시대를 배경으로 한 무협지가 아니라, 우리 최근세사에 그냥 그대로 있었던 사실이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처음 반대편으로 넘어온 정권이 김대중이었고 그렇게 되기까지 40여 년이 걸렸다. 기적이라고 봐야 한다. 엊그제 검찰 수사 발표를 보라. 돈이 다 어디로 가던가. 그 돈을 쓰고도 대통령을 넘겨 주었다니, 그 편에서는 참 통탄스러운 일이었을 것이고 한편 바보들이기도 하다.
너무 해이했었나? 지금, 40여 년 동안, 아니 친일 세력까지 하면 근대 이후 기득권과 그에 기생하던 사람들은 그 세월이 그리워 미치는 것이다. 얼마나 불편했겠는가. 전화 한 통화면 군대를 뺄 수 있고, 전화 한 통화면 수 백억이 척 대출되고 또 전화 한 통화면 예비군 훈련이 면제요, 민방위 정도는 전화 안 해도 알아서 빼줄 것이다(뭘 그런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주워 섬기느냐고? 모르시나?). 그러니 그 동안 번 돈 좀 십시일반 조금씩(한 100억 정도씩!)주면 다시 그때 그 시절, 그때 그 사람 다시 만나 희희낙락할 수 있었겠다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다시는 일어나면 안될 일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한 번은 어쩌다 하는 실수라 치지만 또다시 노무현이라니….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불과 일 년이지만 스트레스 엄청 받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돈이 와야 할텐데 그게 오지 않았을 테니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그게 직업이었는데. 앞으로 4년? 까마득했을 것이다. ‘애국’이 직업인 자들의 스트레스란 다른 직업과는 크게 차이나야 정상이다. 왜? ‘애국’이지 않는가 직업 이름이.
게다가 한 달 후면 ‘애국직업 재계약 시즌'이 돌아오는데 돈 없이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지지자들을 알고 있는 그들에게 지금이 어떤 정도의 불경기이겠는가. 그들은 그 히스테리를 탄핵으로 폭발시켰다. 다시 한번! 탄핵의 주인공들을 보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들을 받들고 수호하던 자들이다. 분단으로 먹고사는 ‘분단 산업’의 종사자들이 아닌가. 게다가 ‘동과 서’의 분열을 전제로 자신들의 직업 재계약이 보장되는 체제이지 않은가.
히스테리가 오죽했겠는가. 거기에 서서히 균열이 생기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자신들의 직업의식을 버리지 않는다. ‘애국’이라는 것이다. ‘나라’가 앞으로 4년 더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라’라는 말 대신에 ‘우리 동업자들’이라고 하면 되는 것인데도 ‘애국’으로 장식한다.
이제는 속지 않는다. 4월15일 이후엔 그 ‘장식’이 진창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광화문에서 돌아와 나는 김수영(金洙暎)의 시 '하…그림자가 없다'를 읽었다. 아름답다. 지면상 옮기지 못해 안타깝다. 다 같이 읽고 싶다. 하… 나의 그림자! /장석남(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
하… 나의 그림자
입력 2004-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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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25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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