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남편이 아내에게 강제로 추행을 해서 아내가 상해를 입은 사건에서 비록 부부 사이라 하더라도 형사상 강제추행치상죄로 인정된다는 하급심 판결이 나왔다. 당사자가 항소를 포기했기 때문에 대법원의 판결로 받아볼 수는 없지만 대법원까지 갔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법조인들의 중론인 듯하다. 여하튼 위 판결은 결혼한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과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존중한 판결로서 큰 의미가 있다.
 
이혼상담을 하다보면 폭행을 행사하는 남편들이 폭행 후 강제적으로 성관계를 가지려고 하는 경향이 매우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여성의 전화에 따르면 올 들어 최근까지 상담한 사례 가운데 남편이 아내를 때릴 때 강제적 성행위를 동반한 경우가 10%를 넘는다고 한다. 아내들은 폭력을 당한 것만도 괴로운 데 이에 더하여 강제적인 성관계를 갖게 되는 경우 자신이 사람이 아닌 욕구 해소의 도구로 처우 받는다는 생각에 치욕감을 느낀다. 그로부터 받은 정신적인 상처가 너무 커서 극단적인 경우 성관계 자체를 기피하게 되는 경우까지 생기기도 한다. 반대로 가해자 측은 자신이 아내를 강제적으로 성추행하거나 강간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폭행의 미안함을 성관계로 보상해 준다거나 자신이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성관계를 갖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간관계는 서로 존중할 때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고, 또 부부처럼 늘 대면하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존중되어야 할 덕목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한편 우리 사회에서는 부부간 성폭력은 집안의 문제로 보고 남이 상관할 수 없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아내는 남편에게 종속된 존재라는 과거 가부장제 문화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는 편이다. 아직도 부부 싸움할 때 본인이나 이웃이 경찰에 신고한다는 것은 흔치 않으며, 폭력에 동반된 원치 않는 성관계를 하고나면 치욕감과 자포자기 심정에 신고는 너무 먼 이야기가 돼버린다. 또 아직까지 대부분의 가정폭력의 피해자들은 신고를 극단적이고, 종국해결이 아닌 임시방편으로 생각할 뿐 시간이 더 지나면 가해자들이 더 큰 보복을 하리라는 생각을 한다.
 
현재 운용되는 가정폭력방지법 등에서는 부부, 혹은 부모 자식 간에서 벌어지는 가정폭력사건에 대하여 가해자에게 피해자에 대한 접근금지가처분, 수강 봉사명령 등 6가지 보호처분 등 불이익이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위 가정 폭력에는 아직까지 강간이나 성추행등과 관련하여서는 명문 규정이 없다. 즉 특별법에 규정이 없으므로 일반법인 형법에 근거하여 처벌하는 수밖에 없는데 1970년대의 부부간에는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30년이 지난 현재까지 유지되어 왔기에 굳이 강제추행이나 강간 등으로 기소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성단체에서 위 가정폭력방지법에서 아내 강간을 인정하는 조항을 삽입해 줄 것을 요청하는 이유가 그런 입법의 미비함 때문이다.
 
물론 부부간의 내밀한 문제인 성관계를 가지고 처벌 운운하는 것은 지나친 사생활의 침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자식이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것처럼 아내의 성도 남편의 소유물이 아니므로 강간죄에서 요구되는 폭력과 협박을 엄격히 해석하여 법을 의율하면 되는 것이지, 단지 가정 내 문제라는 이유만으로 사회가 폭력을 용인해서는 안된다. 성에 대한 결정권은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에 의한 당연한 권리로서 존중받아야 하는데 인권국가를 자처하는 우리나라가 대부분의 선진 국가들이 택한 부부간의 강간 처벌조항을 아직까지 제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찌 보면 부끄러운 일이다.
 
위 판결을 계기로 부부간 성 폭력은 일반 폭력과 마찬가지로 가정 내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에서 다루어져야할 것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생기길 기대한다./장미애(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