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일하고 있는 연구소도 '탈(脫)서울'을 위해 강원도 시골에 연구소 건물을 짓고 있다. 막다른 마을이라 사람들은 그곳을 ‘퇴골’이라 부른다. 근래 자동차 통행량도 많아졌지만 아직 상대적으로 덜 오염돼 가히 야생동물의 천국이라 할 만하다.
얼마전 일이다. 시공업자인 목조 건축가 맹목수가 자정 무렵에 전화를 했다. 한두 시간 전까지 필자와 같이 집을 짓던 사람이다. “고라니 한 마리를 싣고 연구소로 갈 겁니다. 괜찮겠죠?” “아닌 밤중에 웬 고라니?” “차에 치었나봐요. 그대로 산으로 보내면 죽을 것 같아 연구소 욕조에서 하룻밤 보호한 뒤에 내일쯤 치료를 해서 보내야 할 것 같아요.”
현장에 달려가 봤더니, 낮에 같이 일하던 젊은 목수들, 그리고 경찰관 두 명이 고라니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제법 큰 놈이었다. 키 높이가 좋이 1m가 넘었고 겨울을 앞둬서인지 제법 살이 올라 있었다. 자동차 불빛과 엔진소리, 그리고 웅성대는 사람들로 고라니는 매우 당황스러웠겠지만 몸이 성치 않아서인지 별다른 저항없이 조용히 서 있었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어쩌지요? 마취주사를 쏘아 쓰러뜨릴 수도 없고…” “일단 연구소로 데리고 가서 하룻밤 재운 뒤에 내일 어떻게 해보지요.” “안돼요. 야생동물은 사람이 강제로 잡으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겁니다.” “맞아요, 다리를 다친 게 아니니까, 산으로 돌려보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동물들은 자생능력이 뛰어나지요.” 고라니 옆구리에는 타이어 자국이 박혀 있었고, 엉덩이는 찢어져 있었다. 길바닥에는 고라니의 털가죽이 떨어져 있었다. 뼈를 다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최근 국정감사를 통해 한 국회의원이 밝힌 자료에 의하면, 고속도로에서 차량에 치여 죽는 야생동물, '로드킬(road kill)'이 해마다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98년 이후 올 9월까지 로드킬을 당한 야생동물은 모두 3천961마리인데, 98년 105마리, 99년 158마리, 2000년 254마리, 2001년 429마리, 2002년 577마리, 2003년 940마리, 금년 9월 현재 1천498마리 등으로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98년 이후 로드킬 당한 동물 중 고라니가 1천495마리로 가장 많았으며, 이어 너구리, 노루, 토끼의 순이었다.
고라니를 둘러싸고 우리는 한참 동안 설왕설래했다. 그런 가운데 어떤 사람은 고라니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기도 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만,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이 적대적이지 않음을 느꼈는지 불안한 가운데에도 고라니는 쉽게 머리를 맡겼다. 이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좋은 방향으로 모색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을 고라니는 알아챈 것 같았다.
누구도 그날 밤에 고라니의 값을 매기지 않았고 고라니 고기맛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오로지 고라니를 살릴 걱정만 했고, 고라니는 그런 우리를 깊이 느끼고 있었다. 환경운동을 통해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 달라지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환경운동을 통해 생명에 대한 사랑이 틀린 가치가 아니라는 것이 조금은 퍼진 것 같다. 다른 생명체와 같이 살아갈 수 있을 때 우리도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고라니를 산으로 되돌려 보내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플래시 불빛을 산쪽으로 몰면서 우리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산으로 돌아가라. 가족들이 널 찾고 있을 거야.' 고라니는 천천히 개울 난간을 걷기 시작했다. 몸속에 생전 처음 겪는 고통을 가득 머금은 힘든 걸음걸이였다. 난간이 끝나는 콩밭 어귀에서 고라니는 고개를 돌려 우리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고라니는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고라니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았다. 헤어질 때, 우리는 마치 오래된 형제들처럼 서로 따뜻하게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최성각(작가·풀꽃평화연구소장)
산으로 돌아간 고라니
입력 2004-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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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14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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