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지방분권이란 중앙이 갖고 있던 권한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으로, 행정 분권과 주민참여가 전제되어야 하는 개념이다. 두 가지 중에 중앙의 권한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행정 분권'은 어느 정도 가시적인 추진이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이나, 진정한 행정 분권을 실현하기 위해서 활발하여야 할 '주민참여'는 아직 미진한 게 현실이다.
 
지난 1990년대 이후, 국민소득의 향상, 민주화의 진전 및 지방자치제의 실시로 인해 우리나라의 사회·경제·문화적 여건은 급격하게 변화해 왔다. 이에 따라 도시계획의 큰 틀도 새로운 ‘도시 만들기’에서 기성 시가지 정비를 통한 ‘마을 가꾸기’로 확대되고 있으며 지방자치시대의 출범으로 인해 지방자치단체별로 구체적인 정비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주민참여가 꽃 피울 수 있는 여건임에 틀림없다.
 
사실, 인류는 원시공동체 시대로부터 자신들이 사는 거주지를 스스로 계획해 왔다. 그러나 지배·피지배 관계가 생긴 이후로 계획은 지배자의 임무이자 권리가 되었고 주민은 단지 계획된 거주지에 ‘배치’되었다. 그것은 주민으로부터 거주지를 계획하는 능력을 빼앗아 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1960년대 이후 서구에서 나타난 도시계획과정에서 주민참여는 이러한 계획능력을 다시 회복해보려는 노력이자 누가 계획의 주체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라 볼 수 있다.
 
선진국들이 도시계획에서 주민참여를 시도해왔던 배경에는 개별 프로젝트에 대한 주민의 반대가 커진 것도 이유 중의 하나이다. 많은 시간과 경비를 투자하여 준비해 온 개발계획이 개발허가를 받을 시점에서 주민의 반대에 부딪혀 대폭적인 변경이나 궤도수정을 할 수밖에 없는 사례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도시계획과정에 주민의 의견을 미리 반영하고 그에 따라 개발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비용 절감에 도움이 되었고, 보다 바람직한 도시환경을 조성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주민참여를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다양한 형태의 주민참여가 이뤄지고 있다. 각종 자원봉사, 주민창안, 주민과의 간담회, 법정위원회에 일반주민 참여, 민관협력의 공익프로젝트 추진 등이 그것이다. 모범적인 사례들도 심심찮게 보도되곤 한다. 그러나 개인의 토지에 대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도시계획, 건축에 이르면 문제가 달라진다.
 
한편, 민선3기에 들어서면서 각 도시들은 경쟁적으로 '마을만들기'를 추진하고 있다. 상당수의 지방자치단체들은 단체장, 행정공무원, 지방의회의원 그리고 시민조직을 통해 마을만들기를 유도하고 있다. 마을만들기는 지역주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마을만들기에 따라 갖가지 건물들도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참여와 협조만이 살고 싶은 동네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전문가의 역할이 있다. 마을을 가꾸는 사업들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조언과 지도가 절대적이다. 현재 국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마을가꾸기 사업은 대개 시민단체 활동가나 일부 교수들의 조언아래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도시의 물리적 공간 형성을 책임져야 할 건축가는 아쉽게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동네 사람들이 아프면 1차 진료기관인 동네 의원부터 간다. 동네를 살고 싶도록 가꾸려면 '동네건축가'를 찾아가 조언을 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건축가들은 동네에는 없다. 모두 특정 지역에 몰려 있다. 스타를 꿈꾸는 사람들이 여의도나 충무로에 둥지를 틀 듯이, 강남에 그렇게들 몰려 있다.
 
건축가들의 머릿속에는 아직 동네, 도시, 공공성, 이런 것들이 별로 없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있어도 부정적으로 있을 때가 많다. 도시는 필요악이고 공공성과 사업성은 별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꽤 많다. 그렇다. 건축가는 스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동네의 문제된 곳을 필요할 때 고쳐주는, 동네건축가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고 보람있는 전문인일 것이다. 주민이 계획의 주체가 되는 주민참여의 시대에 마을 주민을 이끌고 갈 '동네 건축가'의 출현을 기대해 본다. /김세용(건국대 교수, 도시설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