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에 북유럽 몇몇 도시를 다녀왔다. 최근에 북유럽 도시에 일고 있는 도시개발과 관리의 방향을 알아보는 게 주목적이었다.
 
우리나라 도시에서 시도되고 있는 여러 가지 혼란과 실험을 이미 겪어 본 그들이 요새는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는 지도 궁금했다.
 
11월의 북유럽 도시는 스산했다. 기온이 영하를 오가는데다, 오후 서너 시 정도면 해가 저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얼굴은 밝아 보인다.
 
눈길을 돌려 건축물을 보면, 건물에 간판을 붙이는데도 규칙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2층 이상에 간판을 다는 건 안 된다. 간판의 색채는 배경이 되는 건물의 색을 고려한다. 간판의 크기와 글씨에도 엄격한 기준이 있다. 그런 거리가 모여 도시가 되고, 신도시를 만들 때는 역순으로 원칙이 적용된다. 그러니 도시는 자연스럽게 배경이 된다.
 
북유럽의 도시는 모나지 않고 평범하다. 평범이 쉬울 것 같지만, 우리 도시를 보면, 이러한 평범이 얼마나 얻어내기 힘든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인간을 위한 배경이 되는 도시, 튀지 않는 도시를 만드는 데는 숨어 있는 원칙이 있다. 이번 답사는 그러한 원칙을 찾아내는 과정이었다.

원칙 하나. 도시는 주민과 전문가가 함께 만들어 나간다. 쉬운 말 같지만, 도시계획을 해 본 전문가들은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할 것이다. 암스테르담 시청에서 만난 도시설계가 앨러드 졸스는 “이 한 권의 보고서(암스테르담 도시계획)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민을 만났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계획기간동안 사무실은 항상 시민에게 개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코펜하겐 역시 마찬가지다. 도심에 새로운 광장을 만드는 작업에 대한 시민의견을 1년 내내 청취하고 있다. 상설화된 공청회인 셈이다.
 
원칙 둘. 도시는 인간중심으로 만든다. 차량보다는 인간이 중시되는 도시, 인간끼리 오순도순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자는 노력이 그것이다. 지난 70, 80년대를 거치며, 탄력을 받아온 인간위주의 교통정책은 이미 무르익을 대로 익은 느낌이다. 4차선의 차도가 2차선으로 줄어들고, 여기서 얻은 2개 차선은 보도나 자전거도로로 둔갑한다. 차도의 턱은 휠체어 이용자나 노약자를 고려하여 현격히 낮춘다. 차량과 보행자를 철저히 분리하던 이른바 보차분리(步車分離)의 원칙은 어느덧 보차혼용(步車混用)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주거단지에서 그러하다.
 
자전거는 이미 자동차이상의 역할을 한다. 자전거의 교통수송분담률이 30%(서울의 지하철 수송 분담률 정도)를 넘는 암스테르담은 차치하고라도, 그 추운 스톡홀름에서도 사람들이 자전거를 즐겨탄다.
 
원칙 셋. 개성과 다양성의 추구. 어느 외국인이 서울의 이상한 첫인상으로 거리에 온통 검은 머리만 돌아다니는 것을 들었다. 다음으로는 거의 같은 형태의 아파트촌을 꼽았다.
 
스톡홀름 근교에 있는 주거단지는 불발로 끝났지만, 2004년 올림픽선수촌으로 계획되었다. 북유럽의 기후에 어울리지 않을 성 싶은 전면유리창으로 구성된 아파트 입면이 눈에 들어온다. 4~5층에 10~15호 정도로 이루어진 주거들은 그 어느 것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다. 따라서 1동, 2동하는 구분이 불필요하다. 사람들은 건물 외관을 보고서 자기 집을 찾아간다. 주동의 벽면에 1, 2, 3식의 동 번호를 붙여 놓는 공동주택은 아무리 찾아도 볼 수가 없다. 이것 역시 우리 도시가 외국인에게 보여주는 낯설은 풍경임에 틀림없다.
 
북유럽 도시를 돌아보며, 추출해본 몇 가지 도시개발의 원칙은 단순한 것이었고, 수요자인 일반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우리 도시는 아직 그걸 하지 못하고 있다. 여러 생각이 떠오르는 출장이었다./김세용(건국대 교수, 도시설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