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고초려로 모셨던 이헌재 부총리가 마침내 '전부총리’가 되었다. 대통령이 그의 사의를 '최대한 존중’하신 것이다. '최대한’이라는 표현에서 뜬금없이 떠오르는 것은 조선시대 사화가 빈번하던 시절 귀양을 보낸 얼마 후, 조용히 사약을 내리던 집권자의 인치(人治)방식이 떠오른다. 그가 부동산 투기꾼이라는 게 백일하에 드러났건만 어거지를 쓰며 보호하려다 식지 않는 차가운 여론에 밀려 마음을 바꾼 청와대도 망신의 극치를 떨었다. 연세도 많으신 분이 왜 그렇게 사셨을까. 관운은 있었으나 행적을 보아하니 불미스러운 퇴진의 연속이었다. 자존심이 강하다던데 진짜 자존심이 강한 이라면 그렇게 살지 않았을 것이다. 똑똑하다고 하지만, 골프장 건설이라는 국토파괴로 경제회생을 하려는 무지막지한 발상을 보면 사라져야 할 반생태적 사고방식의 소유자였을 뿐이다. '분배보다는 선성장’이라는 낡은 패러다임에 도취해 있었던 것으로 볼라치면, 금세기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난제가 빈부 차이의 극복이라는 보편적 인식의 핵심에서 떨어져 있던 인사임에 틀림없다.
 
안타까운 것은 새로울 것도 없는 고위층 땅투기꾼들이 아니라 그런 땅투기꾼을 경제수장으로 기를 쓰고 끌어안으려고 갖은 안간힘을 다 썼던 참여정부다. 사건이 터지자마자 국민들더러 “양해해 달라”던 총리의 부탁은 민심의 분노를 외면하고 여론 위에 참여정부가 있다는 오만불손의 극치였다.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모인 시민단체에서 김지하 시인의 담시 '오적(五賊)’을 인용한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나라를 위한 정당한 비판을 잘못 획득한 불안한 정권에 대한 공격으로만 읽었던 박정희 시절, 김지하 시인은 나라의 다섯 도적으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열거했다. 경실련 등 17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토지정의시민연대는 이번 사건에 직면해 “최근 고위 공직자 재산공개에서 잘 드러났듯이, 이 오적은 대부분 부동산 투기꾼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지적하며 토지불로소득 국가환수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사실 공직이라는 우월적 지위와 정보력을 사용(私用)해 천문학적인 불로소득을 취한 것은 전부총리뿐이 아니었다. 단언컨대, 이들은 공직자가 아니라 범죄자들이다.
 
민주화 운동했던 이들이 정권을 잡는 데까지 이른 감동적인 한국사회는 정말 나아졌는가. 3월 초순, 국세청에서 밝힌 자료에 의하면, 전체 인구 중 1%가 이 나라 국토의 45%를 소유하고 있단다. 인구 10%로 따질라치면 그들이 전체 국토의 72%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에 의하면, 인구 90%의 서민대중들이 전체 국토의 28%에서 복닥거리며 살고 있다는 게 이내 계산된다. 여기가 입헌군주국인가? 작은 섬나라 왕국인가. 세상에 이런 나라가 어디 있을까. 이런 엉터리 나라는 달라져야 한다.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 심각하게 '토지정의’를 이야기하기 전에 어렸을 때 놀던 땅따먹기의 '상식'으로 봐도 그렇다. 같은 말을 쓰는 100명이 100평의 면적 안에서 땅따먹기 놀이를 하는데, 그 중 10명이 72평을 따먹었고, 그 중 1명이 45평을 독식했다면, 나머지 90명은 무엇인가. 봉? 들러리? 무능력자? 놀이판을 엎어버리고 싶어질 건 자명하다. 이 자명론은 그렇지만 씁쓸한 무력감에 이내 함몰되고 만다. 하지만 서민의 무력감이 '없던 일’로 사라진 적은 한번도 없었다. 무력감도 쌓이면 역사를 움직이는 힘으로 분출하고야 만다.
 
하지만 참으로 다행이다. 노대통령이 8일, 이헌재 전경제부총리의 부동산 투기의혹에 대해 “관계기관으로 하여금 명백하게 진실을 밝히도록 하겠다”고 밝힘으로써 검찰의 내사 착수가 주목되고 있는 일은 '부동산투기는 필요악이라 하더라도 근절하겠다’는 대통령의 말이 신념이기를 바란다. 그게 전부총리를 잠시 붙잡으려던 망신에서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최성각(작가/풀꽃평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