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얼마 전 중국 심양에서 북한의 천도교청우당 고위인사들과 접촉할 기회를 가졌었다. 천도교청우당은 노동당, 사회민주당과 함께 북한의 3대 정당으로 남쪽의 민간단체와의 교섭을 주로 하고 있는데 필자가 사회활동 차원에서 일하고 있는 동학민족통일회라는 시민단체와 뿌리를 같이하고 있기에 대화의 창구가 연결되어 있었다.
 
남북 당국자간의 대화가 막혀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민간 차원에서의 이 같은 창구가 활발하게 교류를 해 주는 것이 통일운동에 나서는 시민단체의 임무이기도 하다. 만남의 주 의제는 북한의 어려운 경제사정에 대한 지원 요청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남북공동관심사안에 대한 논의로 이동되었다. 3일간에 걸쳐 회담을 하면서 역시 우리는 한민족, 한 공동체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분단이 영속될 수 없기에 우리의 노력은 계속되어야 하고 그 바탕은 동조동근(同祖同根)의식이요, 영토와 역사와 문화를 공유한다는 동질감이다. 여기서 민족과 역사의식에 관한 한 북측이 더욱 철저했다.
 
최근 다시 불거진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해 북측은 남한의 독도수호 의지가 부족한 것 같다며 차라리 독도를 북한에 넘기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농담으로 한 말이었지만 듣는 형편은 낯뜨거웠다. 물론 이제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한일 외교전쟁 불사를 말하니 어느 정도 분은 삭였지만 그 때는 아니었다. 사실 일본이 독도를 넘보는 행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들은 1952년부터 거의 해마다 공식문서로 독도를 한국이 무단점령했다며 항의해 왔고, 특히 현 고이즈미 총리는 우리 K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자기 영토라는 주장을 펼쳤었다. 근자에는 주한일본 대사라는 자가 주재국가에 대한 예의도 없이 무례하게 독도의 영유권 주장을 펼칠 정도였다.
 
문제는 이러한 일본의 행위에 대한 남측 정부의 대응이었다. 지금껏 무대응이 최선이라는 무반응으로 일관하니 일본은 기가 살대로 살고, 우리 국민의 사기는 떨어지고, 북한은 남한의 의지를 의심하기에 이른 것이다. 북한측 인사들은 북한의 영토수호의지를 자신들의 핵무기 보유에서 찾고 있었다. 이른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를 통해 핵개발을 착수했고 이제 핵을 보유했으니 북한 영토에 대한 어떠한 침공에도 단호히 대처할 능력이 생겼다는 것이다. 순진할 정도로 단순 무모해 보이지만 북한의 입장에서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북측은 남한이 척양척왜(斥洋斥倭, 서양과 일본을 물리치자는 동학혁명 때의 구호)를 실현하지 못함을 꾸짖기까지 했다. 오늘의 상황에서 척양척왜가 불가함은 당연지사이나 세계화의 조류에 휩쓸리면서 국민들의 민족의식이 무너졌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작금의 대통령의 글 한편이 민족의 자긍심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다면 이제 이것을 구체적으로 실현해 실리를 담보해낼 프로그램이 뒤 따라야 한다.
 
우선 남북이 손쉽게 동의하고 대처할 수 있는 부분에서 공조가 이루어져야 한다. 독도의 경우처럼 외세에 의한 영토침탈에 대해서는 공동의 수호의지를 만방에 보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영토는 한반도와 부속도서 전체이기에 남북이 따로 일수가 없다. 이는 중국에 의한 고구려와 발해사 왜곡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적어도 현재의 영토와 역사에 대한 침탈은 남북의 민족공조로 단호하게 공동대처한다는 사실을 확고히 알린다면 세계에 한민족의 단일함과 자주정신을 선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어서 최근 공동발굴이 추진되고 있는 안중근 의사의 유해 찾기나 일본에 버려져 있는 북관대첩비의 공동환수 노력 등을 하다보면 의식이 먼저 통일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임형진(경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