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우리 거리를 걷다보면, 간판의 숲을 지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건물은 보이지 않고, 울긋불긋한 간판의 행렬을 마주하다보면 묘한 흥분감이 들 때도 있다. 대도시라는 정글을 뚫고 나가게끔 팽개쳐진 기분이 든다거나, 어쩌다 더운 날에는 까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주인공의 행동이 이해될 것만 같은 때도 있다.
 
필자만 그런 게 아닌 모양이다. 한국을 찾은 서양인들은 우리 거리의 간판에서 ‘다이내믹 코리아’를 느낀단다. 밤낮 없이 어지럽고 찬란한 간판 속에서 그들은 한국을 본다. 서구의 정돈된, 어찌 보면 풀이 죽은 도시 속에서 살아온 그들은 한국 도시의 간판이 쏟아내는 활력에 열광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들이 말하는 ‘다이내믹 코리아’는 ‘역동적인 한국’보다는 ‘무질서한, 그래서 활력이 엿보이는 한국’에 가깝다. 난장판의 즐거움이란 뜻이다. 몇 개월, 몇 년 살다갈 외국인들에게는 간판이 재미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평생을 살아야할 도시민들에게 간판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공해로 다가선다.
 
작고한 미국의 도시설계가 케빈 린치(Kevin Lynch)는 '도시의 이미지'라는 저서에서, 도시의 이미지는 거리(path), 랜드마크(landmark)등과 같은 요소들에 의해 형성되며,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이런 것들에 대한 기억이 지도처럼 각인되어 길잡이 역할을 한다고 설명하였다. 이때 랜드마크는 높은 건물처럼 고정적인 길잡이이며, 거리는 연속적인 길잡이임을 뜻한다. 즉 사람들은 멀리서도 볼 수 있는 큰 건물이나 특색 있는 건물에 의존하여 방향을 잡은 뒤, 거리를 지나가며 목표점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랜드마크나 거리는 중요한 정보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실 서구도시는 길 찾기가 참 쉽다. 1번지 옆에는 3번지, 5번지하는 식으로 홀수번지가 나란히 있다. 물론 맞은 편에는 2, 4, 6등 짝수 번지들이 도열해 있다. 따라서 번지만 알면 대개는 길 찾기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우리 도시에서 이걸 기대하기는 어렵다. 사실 우리 도시에서 주소를 찾는다는 것은 미로를 헤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1번지 옆에 100번지가 있고, 하나 건너 2-3번지가 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오죽했으면 우편배달원이 지번체계에 익숙해질 만하면 정년퇴직하게 된다는 말이 있을까. 지번이 정보로서 작용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계획 없이 성장해온 부실 도시의 모습이 번지제도에서도 엿보인다.
 
우리에게 간판은 주요한 정보원이다. 서구 도시처럼 번지만 알아서는 길을 찾을 수가 없기에 간판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간판은 남에게 자기를 알려야 할 속성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좀 더 커야 하고, 더 자극적이어야 하게 되었다. 사실 간판이 크다고 매출이 느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상점 주인들에게 간판은 마케팅의 출발점이 된다. 남보다 가게를 잘 알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광고매체인 것이다. 여기서부터 지면 안된다는 절박한 심정은 옆집이 노란 간판을 달면, 나는 노란 간판에 빨간 줄을 덧대서 매달게끔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단속이 의미가 없다. 기존 간판의 70%이상이 불법이란 통계는 그래서 나온 것일게다.
 
이래저래 문제 풀기가 어렵다. 우리 거리에서 간판은 정보원의 역할도 하고, 이제는 건물 외피의 역할도 한다. 하지만 각종 정보가 홍수를 이루고, 유비쿼터스 시대가 도래한 이때에 번지가 체계적으로 되어 있질 못해 큼직하고 자극적인 간판으로 오가는 시민의 눈길을 끌어야 한다면, 거기다가 간판이 건물 외피로 작용하고 있는 거리라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요새 몇 몇 도시에서 행해지고 있는 간판교체에 대한 보조금 지급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을 생각해야할 때이다. /김세용(건국대 교수·도시설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