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 늘 부글부글 끓는 용광로 같은 나라지만 이번에도 X-파일 소동으로 온나라가 어수선하다. 검찰이 불법도청의 ‘불법’에 힘을 줄 것인가, 테이프에 담긴 내용의 범죄성에 ‘정의의 칼’을 휘두를 것인가, 그게 초미의 관심사다. 사실 법치국가라 ‘법’의 판단과 심판에 기댈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만, 국민들의 속내를 그대로 표현할라치면 무진장 믿고 싶지만 ‘검찰을 못 믿는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특별검사제 도입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그런 불신 때문이 아니겠는가. 대단히 잘나고 오만한 검찰조차 ‘국민들의 신뢰회복’, 그런 이야기를 가끔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단지 순서일 뿐이다”라곤 하지만, 기자부터 소환해 겁을 주는 행태를 보니 이번에도 ‘역시나’로 흐르고 있다. 이런 와중에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론’이 터지자 사람들은 그 제안의 진의와 지역주의 타파라는 구국의 결단보다 그 제안으로 작금의 관심사를 희석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삼성 감싸기’를 하려는 정치공학적 모험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혹마저 일고 있다. 노 대통령이야 본디 권력이 체질에 안 맞아 그러시는지 모르겠지만, 권력을 주겠다고 하는데도 ‘웃기지 마시라’는 한나라당은 아마 조금만 기다리면 절로 굴러들어올 권력을 “골이 비었어?”, 그런 배짱이 아니겠는가, 읽힌다. 꼭 그렇게 될진 아무도 모를 일인데도 말이다.
그런 가운데 올해 초 한 언론대학원의 석사논문 내용이 뒤늦게 소개되어 주목을 끈다. 제목은 ‘한국 언론사주의 혼맥에 관한 연구’(조광명)이다. 석박사 논문이라는 게 대개 관련자들 몇몇만 돌려 읽고 마는데, 이 논문이 뒤늦게 널리 주목받는 것은 X-파일의 당사자들이 바로 언론재벌 대표이고, 초일류기업의 고임금 하수인이었기 때문이다. 논문은 ‘혼맥은 신문사주와 재계 사이의 파이프라인 구실을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파이프 라인은 되게 복잡하다. 조선일보와 엘지그룹이 사돈이다. 엘지에서 뻗어나간 혼맥은 벽산그룹과 박정희, 김종필씨 등과 연결된다. 조선일보 방씨네 한 형제는 또 태평양그룹과 사돈이며 건너건너 농심, 동부그룹, 삼양사 등과도 맥이 닿는다. 삼양사는 동아일보 창립자 일가와 형제집안이어서 결국 견원지간처럼 보이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멀긴 하지만 인척관계다. 동아 김병관 전회장의 아들은 삼성 이건희 회장의 딸과 결혼했다. 이건희 회장은 이번 X-파일의 주역인 홍석현씨의 아버지 홍진기씨의 사위이므로 결국 조선은 중앙과도 연결된다. 홍진기 회장의 둘째딸은 노신영 일가에 시집갔는데, 노 총리의 아들은 현대그룹의 사위가 됐다. 현대의 혼맥은 엘지에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엘지의 허씨 일가는 조선과 인척관계이다. 중앙은 삼성 혼맥을 통해 동아와도 연결된다. 그렇담 현대와 조선 중앙도 피가 연결된다. 쉽게 말해 ‘조중동’이 한집안인 셈이다. 서민들은 거대신문과 재계의 이 거미줄 같고 철옹성 같은 혼맥 카르텔을 어떻게 바라볼까. 담배를 끊은 사람은 이 논문 때문에 갑자기 담배를 다시 피우고 싶어질 것이다. 술을 끊은 사람은 갑자기 소주병을 뚜껑 째 씹고 싶어질 것이다. 분노 끝에 ‘더 나은 세상은 불가능하다’는 낙담과 절망감으로 이어질 것이다.
가브리엘 마르께스가 작년 가을에 10년만의 신작,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을 내놓았다. 거기 그런 구절이 나온다. ‘슬픈 창녀들, 늙어서 슬픈 여자들, 고독해서 슬픈 여자들, (…) 에렌디라처럼 처녀성을 바나나 한 개 값으로 바꾸고 나중에는 할머니에 의해 몸을 팔게 되는 비쩍 마른 소녀, 그리고 배가 고파 남자와 잠자리를 하는 여자들, 이들이 슬픈 창녀들이다. 그러나 창녀들이 말하는 최악의 여자는 정략적으로 결혼하거나 남편을 속이는 여자들이다. 그들이야말로 창녀 중의 창녀라는 것이다’ 대가의 해석대로라면, 최악의 사람들이 지금 이 나라를 너무 오래 쥐락펴락하고 있다. ‘법’이라도 국민의 한숨소리를 하늘의 소리로 귀기울여 주기를 바라건만, 이번엔 어떨까. 날을 세우고 지켜볼 일이다./최성각(소설가/풀꽃평화연구소장)
최악의 사람들
입력 2005-08-04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5-08-04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
-
투표진행중 2024-11-18 종료
경기도는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역점사업이자 도민들의 관심이 집중돼 온 경기국제공항 건설 후보지를 '화성시·평택시·이천시'로 발표했습니다. 어디에 건설되길 바라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