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BBB+'에서 'A-'로 상향 조정함으로써 최근 4개월동안에 무디스와 피치 등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의 한국 국가신용등급이 모두 'A'등급으로 올랐다. 비록 IMF사태 이전의 'AA'와 비교할때 아직 3단계 낮은 수준이지만 그동안 부도위기 국가라는 대외 이미지를 상당부분 불식하고 국민사이에 만연했던 패배주의를 극복했다는 점에서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더욱이 이번 S&P의 상향조정은 국가신용등급 조정이 통상 대상국가에 대한 실사를 거친 뒤 6주후에 발표되는 것이 관례라는 점을 감안할때 매우 이례적인 조치로 받아들여진다.

금번 신용등급 상향에 따른 경제적인 이득은 매우 크다. 정부가 국제금융시장의 자본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신용불안에 따른 가산금리를 비롯한 불이익이 크게 줄어들게 되었다. 또한 신용이 아무리 좋아도 국가신인도 이상으로 신용등급을 받을 수 없는 원칙 때문에 외자유치와 시장개척에 어려움을 겪던 국내 우량기업과 금융기관이 직간접적인 피해도 덜게 되었다. 당장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도가 'A'등급으로 회복되자 리보에 0.476%가 더 붙던 시중은행의 중장기 해외차입 가산금리가 0.33%로 내려간 것이나, 국책은행과 일부 공기업의 신용등급이 'A'로 오르고 삼성전자의 장기 외화표시채권 등급 전망이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상향조정된 것은 바로 '신인도가 돈'이라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국가신용등급 상향을 아직 만족하고 안심할 만한 수준으로 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단기간에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신용등급도 빠른 속도로 회복했으나 아직 외환위기 이전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에 한국은 신용등급을 더욱 올리고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S&P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더 오르려면 소액주주 및 채권자의 권리강화와 회계기준 개선, 정부 보유 은행의 민영화와 하이닉스반도체 문제 해결 등 지속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따끔하게 지적한 바 있다. 이는 경제성장이나 외환보유고 등 거시지표면에서 많은 성과가 있었지만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나 민영화 추진 등 투명성 제고와 질적인 면에서 아직 미흡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적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당장 IMF사태 이후 국내 기업의 위기극복 사례를 보더라도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마치고 도약의 계기를 맞은 기업이 있는 반면, 퇴출이라는 호된 대가를 치른 기업도 적지 않음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결국 성장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부딪치는 전환기의 위기와 도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다.

현재 한국경제는 겉으로 보면 안정궤도에 올라선 모습이다. 1천120억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으로 대외충격에 대한 대응능력이 높아지고 구조조정 성과면에서는 일본보다 낫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또한 금년도 경제성장률이 6%대로 뛰어오를 것으로 보는 등 지표상으로도 양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외환위기라는 심한 열병을 앓고 회복되어 막 기초체력을 다지면서 강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체질을 바꾸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위기극복 뒤의 부실한 사후관리로 인하여 재도약의 호기를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최근 정치권의 혼란이나 서해교전으로 인한 남남갈등, 노사분규의 재연, 주5일근무 도입시기 논란, 부동산 투기조짐 등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 거품이 커지고 긴장이 풀어지는 부작용을 보이고 있다. 모처럼의 호기를 놓치고 어렵게 회복한 신용을 다시 잃으면 어떠한 대가를 치르는지 우리는 이미 외환위기를 통해 경험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철저한 위기관리 시스템 구축과 시장경제 논리에 기반한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특히 시행과정에서 신뢰와 기본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위기 뒤에 찬스는 오지만 기회를 놓친 다음에는 반드시 더 큰 위기가 오는 법이다. <김이환 (아남반도체 비서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