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정보화, 자율화, 규제완화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현대사회에서 삶의 변화는 소비자분야에도 새로운 소비자주의와 소비자상의 정립을 촉구하고 있다. 소비자-사업자-정부라는 대립적인 구도에서 피해자, 선택자라는 수동적인 소비자상을 전제로 한 소비자주의가 피해구제 등 소비자를 '보호'하는데 주력했다면, 이제는 저항자, 참여자, 시민이라는 능동적인 소비자상을 전제로 한 소비자주의가 소비자 스스로 '권리'를 찾는 행동과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인터넷의 급속한 확산에 이은 월드컵의 열기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듯이 소비자는 변하고 있다. 그저 기업이나 정부가 무엇인가 해주기를 기대하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정치적 또는 윤리적 가치를 표명하는 행동과 참여를 실천한다.

경제적 소비자주의에서 정치적 소비자주의(Political Consumerism)로의 변환은 이미 유럽 등 선진국에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정치적 소비자주의는 소비자 선택권의 의의가 경제적 차원에서 정치적 및 윤리적 차원으로 전환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은 물론 소비자의 윤리적 책임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사교육비, 부동산투기 등의 해결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정치적 소비자주의시대에는 사회적 가치창조를 지향하는 기업만이 생존한다. 다행히 일부 우리나라 대기업이 이런 흐름을 감지하고 경영전략을 바꾸어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이 아직도 기존의 소비자 피해구제조차도 다하지 못하고 또한 한다하더라도 그것만 다하면 그만이라는 안일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시민-소비자(citizen-consumer)상에 근거한 정치적 소비자주의는 새로운 소비자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기업에게 경영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불매(BOYcott)운동은 물론 그 정반대의 적극적 구매(BUYcott)운동 등 다양한 창발성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시장에서 사회적 가치를 무시한 채 상품을 생산하더라도 생존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기업이 인권침해, 부당노동행위, 불법상속, 회계부정, 주가조작, 환경침해 등 사회적 가치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돌이켜 반성할 줄 모르는 태도(도덕적 해이)를 견지한다면 소비자는 가격이나 품질이라는 경제적 가치보다는 정치적이고 윤리적 가치를 선호하는 시민으로서 자신의 선택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게 될 것이다.

학교, 언론, 출판 등 그동안 일방적이었던 지식상품을 생산하는 교육 및 지식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과거 교육 및 지식소비자가 단지 선택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유일한 반응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죄책감 없이 표절 등 부실하고 불량한 지식상품이 양산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소비자가 자신의 선택권을 행사해 철저하게 검증하고 퇴출시킬 것이다.

'CORPORATE CITIZEN'. 기업도 시민이다. 세계화된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사회적 가치창조를 지향하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김성천(한국소비자보호원 정책연구실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