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억여원에 달하는 미술관을 인천시에 기증한 송암문화재단이 구설수에 올랐다. 순수한 사회 환원 활동이 아니라 폐석회 처리를 앞두고 벌인 일종의 대시민 선무(宣撫) 사업이 아니었냐는 의구심에서부터 시작해 기증품의 상당수가 가짜라는 주장이다. 심지어는 사전에 상당수의 진품을 빼돌리지 않았느냐는 얘기까지 듣는 모양이다.
그 배경에는 평소 인천 소재 대기업들을 밉보아 왔던 불신과 냉담이 짙게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타 시·도에 비해 형편없는 사회적 기여도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만일 인천이 ‘살아있는 권력’을 배출한 ‘힘센 도시’였다면 과연 대기업들이 시민들의 뜻에 어깃장을 놓는 방자한 행태를 보였겠는가 싶은 일들이 그간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기증 건은 시각을 달리해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싫든 좋든 미술관의 모기업인 동양화학이 창업 이후 일정 부분 지역 사회에 기여해 온 것은 사실이며 현존하는 ‘송상(松商)’의 상징적 인물이자 다년간 인천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지역 경제계의 원로가 말년에 무엇이 부족해 그 같은 졸속한 일을 저질렀겠느냐는 것이다. 일이 그렇게 뒤틀려진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판단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실례되는 말인지 모르나 이회림 회장이 경영에는 ‘달인(達人)’이었을지 몰라도 ‘미술’에 관한 한 열정적인 '딜레탕트(dilettante)'였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그 결과 그가 수십 년간 사들인 1만여 점의 미술품은 다기 다양해 진가(眞假) 여부를 떠나 마치 ‘만물상’을 보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전시장 한가운데 높다랗게 재현해 놓은 실물대 ‘광개토대왕비’ 모형과 천장에 그린 대형 유화 ‘맥아더 장군 인천상륙도’, 그리고 벽면을 장식한 풍속화가 ‘김준근’의 모작들이었다. 광개토대왕비는 민족의 위대성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맥아더 장군 상륙도’는 분단의 비극과 인천의 현대사를 잊지 말자는 의도로, 화가 김준근은 인천을 거쳐 유럽에 알려진 근대 미술인이라는 점을 높이 샀던 것이리라.
하지만 그 같은 ‘소박한 부조화(不調和)’야말로 송암미술관의 성격과 위상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또한 영화 간판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맥아더 장군 인천 상륙도'가 미술관 건립 취지와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견을 조율하거나 일부 ‘가품의 존치 여부’를 거론할 수 없는 사내의 언로(言路) 환경이 오늘의 오해를 불러일으킨 씨앗이 됐던 것으로 여겨진다.
화근은 애당초 문제가 있는 유물들을 분류, 정리하지 못한 채 덜커덕 미술관을 통째로 기증한 데 있었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인지, 폐석회 처리와 연관해 기업의 이미지를 제고해 보려는 요량이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모처럼의 기업 미담(美談)은 멋쩍은 해프닝처럼 취급돼 버렸고 앞으로 누가 여론의 화살을 무더기로 맞아가며 선뜻 ‘사회 환원’에 나설까 하는 걱정을 낳기도 했다.
미술품 위작 시비는 동서고금에 비일비재한 일이요, 최근에도 수많은 이중섭과 박수근이 나돌고 있어 미술 시장이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런 마당에 비전문가가 딜레탕트적인 열정 하나로 사들인 미술품 중에 혹여 가짜가 섞여 있었더라도 그걸 조용히 걸러서 받아들이는 지혜와 아량을 발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랬더라면 기증한 측도 명분을 살리고, 시는 시대로 사후 책임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무슨 큰 추문이라도 발견한 듯 ‘위작 시비’ 운운하는 기사들이 대문짝만하게 신문에 올랐으니 미술관측은 사서 괜한 망신을 한 모양새가 됐고, 시는 또 본의 아니게 남의 바짓가랑이에 ‘흙탕물’을 끼얹은 것만 같아 민망했으리라 여겨진다. 일의 선후를 살펴봐야할 일들이었다.

/조 우 성(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