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리 경제는 IMF위기상황을 졸업했다고 반가워 한 때가 있었다. 외환보유고 성장률 실업률 등 지표상의 경제 상황은 많이 좋아졌다. 그럼에도 확신과 자신에 찬 미래 보다는 금융권의 2차 구조조정과 급증하는 단기외채, 금융시장의 경색 등 해결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 최근 한동안 주식시장이 활력을 잃은 것도 외국인을 비롯한 시장참여자들의 불안심리가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 우리 경제의 숙제중의 하나인 기업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발표된 퇴출기업명단은 숫자에 비해 눈에 띄는 대기업은 포함되지 않았다. 287개 대상 기업 중에서 18개사는 청산절차를 11개사는 법정관리신청을 하기로 하였다. 대북관계, 지역정서 그리고 채권금융기관간의 입장차이로 적지 않은 진통을 겪으면서 조건부 회생을 포함한 발표내용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번에 퇴출되는 크고 작은 수십개 기업들이 한꺼번에 정리될 경우 관련 납품업체나 하청업체들이 연쇄도산 위기에 내몰릴 수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실업자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 기업들이 국내외에서 진행하던 사업이나 공사가 중단되거나 지연되는 등 그 파장이 엄청난 만큼 정부당국은 사후수습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퇴출관련 업체들의 자금난을 덜어주는 것도 매우 시급하다. 특히 납품대금을 받지 못해 여타 기업들이 연쇄 도산하는 일이 없도록 유동성 지원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국회는 초당적으로 협력해 이달중에 심의할 예정인 공적자금 추가 조성안을 신속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일은 노동계의 반발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물론 해고된 근로자들이 겪게 될 좌절감과 고통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구조조정에 따른 고통을 회피하려다간 우리 모두가 훨씬 더 심각한 사태를 당하게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퇴출기업선정이 끝난 이후의 문제는 퇴출기업이 아니라 회생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 기업을 어떻게 채권은행이 지원할 것인가에 있다. 지금은 사후관리 체계를 원활히 작동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부실판정에서 제외된 기업에서 향후 부실이 발생할 경우는 주채권은행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회생가능한 기업으로 분류된 곳에 대해서는 주채권은행이 책임지고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금융권 협조체제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는 기업가 정신의 발로와 기업의 창조적 파괴를 통하여 끊임없이 성장·발전한다. 신규기업이 시장에 진입하는 한편 기존기업은 성장과정에서 구조조정을 반복하며 지속적으로 성장을 도모하나 때로는 도산하여 시장으로부터 퇴출당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기업의 창업과 퇴출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가운데 경제가 성장·발전하는 것이다. 기업 구조조정은 경제시스템이 좀 더 건강해지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고 미루기보다는 신속히 마무리돼야 할 것이다.<이주희(아주대학교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