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산한 늦가을 바람이 두 볼때기를 때리는 어느날 늘상 마주치던 어느 공무원의 부음을 접하고 나도 모르게 잠시 사유의 늪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현관을 드나들때마다 인사를 나누던 그분의 마지막 모습을 뵙고 명복을 빌어드리려는 마음으로 수원의료원을 찾았을 때는 어둠이 소리없이 내리고 있었다.
 훤칠한 키에 반백의 준수한 용모로 차분히 근무하던 담담한 모습이 영정으로 모셔진 빈소에 향을 피운 뒤 옷깃을 여미고 명복을 빌었다. 조문을 마치고 나서야 조문객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그 삶의 끝자락이 더없이 쓸쓸하게만 느껴져 왔다.
 차마 빈소를 그냥 나올수가 없었다. 빈소를 지키던 고인의 동료직원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그분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그분은 도청의 청사를 방호하는 기능직 공무원이었다. 그분의 나이 이제 쉰여섯살. 정말 아까운 나이에 죽음을 택할수 밖에 없었던 그분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하는 연민의 정이 밀려왔다.
 얼마나 삶이 버겁고 절박한 심정이었으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길을 택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저려왔다. 큰딸 아이는 벌써 수년째 병원에 누워있고 아내마져 몸이 불편해 거동조차 어려운 지경이었다고 한다. 큰아들 녀석은 군에서 제대 후 복학해 대학에 다니고 있고 둘째놈은 공익요원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말단 공무원의 박봉으로 수년째 입원해 있는 큰딸의 병원비와 큰아들 녀석의 학비를 마련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분은 이런저런 근심걱정을 잊으려고 가끔씩 소주잔을 기울이며 저린 가슴을 쓸어내리곤 했다고 한다. 이처럼 사는 일이 힘들어 심신이 지쳐갈때면 문득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그분은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차라리 죽어버리면 조의금과 퇴직금으로 큰딸아이 병원비로 유용하게 쓰여질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버거운 삶의 하루하루가 속절없이 흘러갔다. 그러나 삶의 일상은 더욱 어렵게만 돌아갔다. 그러던 가을 어느날 소주잔을 기울이며 가슴을 쓸어내리던 그분은 결국 농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세상 사는 일이 참으로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왔을 것이다. 최선을 다하는데도 대책이 서지 않을 때만큼 절망적인 일은 없다. 그 절망감이 결국 그분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라는 사실에 콧등이 시큰해져왔다.
 몇잔의 술을 적시고 빈소를 물러나왔다. 세상은 이미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숨죽이고 엎드려 있었다. 입동을 지난 바람이 두볼때기를 때렸다. 겨울이 가까이 오고 있는 듯 했다. 그 옛날 면서기 시설부터 시작한 공직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지난 세월 박봉의 어려움속에서 오늘날까지 지탱해온 스스로를 위안해보며 발길을 옮겼다.
 다시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불행한 공직자가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해보며 바라본 광교산 자락 하늘 저편에서 별똥별 하나가 말없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홍승표(시인·경기도서울사무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