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7일은 61회를 맞는 정부기념일인 `순국선열의 날'이다. 우선 이날을 기념일로 지정하게된 까닭을 묻는 이가 있다면 그 해답은 우리나라의 역사중에서 치욕의 을사조약이 체결됐던 19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05년 11월 17일 일제의 강압에 의해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이날로부터 우리나라가 사실상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자 우리의 수많은 선열들은 몸과 마음을 바쳐 조국광복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국독립을 이루겠다는 하나된 우리민족의 의지를 모아 1919년 3·1운동과 더불어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했다. 이후 1939년 임시정부는 을사조약 체결일인 11월 17일을 `순국선열의 날'로 제정,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기념해 왔으며, 1997년부터 우리 정부가 이날을 정부기념일로 지정해 선열들의 유지를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이날 우리가 기리는 순국선열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을사조약과 한일합방을 전후해 나라 잃은 슬픔과 분노, 수치심으로 자결해 순절하신 이한응선생을 비롯해 민영화, 조병세 선생등이 있으며 의병이나 독립군으로 활동하시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신 평민 의병장 신돌석 장군과 이강년, 민긍호 선생등이 있고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제에 체포돼 피살 처형되거나 옥사하신 분들로는 이등박문을 처단한 안중근 의사를 비롯, 윤봉길·이봉창 의사가 있으며 옥사하신 분들로는 유관순 열사와 청포도의 이육사 시인 그리고 서시로 잘 알려진 윤동주 시인이 있다. 이렇듯 그 분들의 조국광복을 향한 접근방식은 각기 달랐지만 순국선열의 정신을 한마디로 함축하자면 다름아닌 `정의'의 결정체,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떤 이는 군대를 모아 독립을 위한 전쟁을 치르고, 또 어떤 이는 자신의 목숨을 내던져 일제의 주요 인사들을 저격했으며 또다른 이는 학교를 세워 조국의 얼을 심어줬다. 또한 신문을 만들어 조국의 상황을 알리는 이도 있었으며, 시와 노래로 조국해방을 꿈꾸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신의 은수저와 금가락지 등을 아낌없이 독립자금으로 기부한 수많은 선조들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들의 바람은 그저 조국의 완전한 해방말고는 다른 소망이 없었을 것이다.
 조국강산과 이역의 국권회복 전선에서 흙이 되고 넋이 되었을 모든 순국선열들의 거룩한 순국정신을 되새겨 보는 `순국선열의 날'을 기해 새천년을 맞이한 우리 후손들의 자화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반성해봐야 겠다. 모쪼록 앞으로 계속될 21세기에는 좀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부끄럽지 않은 후손들의 모습을 그 분들께 보여드렸으면 한다. <이봉춘(수원보훈지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