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입법부가 행정부를 감시·감독·견제하는 여러가지 기능중 대표적인 것으로 국정감사와 국정조사가 있다.

국정감사는 모든 국회의원들이 지난 1년동안 정부가 행한 국정운영 내역을 감사하는 것이고 국정조사는 일부의원들이 특정한 사안을 조사·규명하는 것이다. 필자는 54년전 민주주의에 대해 별다른 지식이 없는데다 경험이 하나도 없었던 제헌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라는 제도를 창안해서 단군 이래 첫 민주헌법에 규정한 것을 상기할 때마다 감탄과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당시 유진오 교수 등이 제기, 헌법기초위원회에서 통과된 안에는 “국회는 해마다 정부를 감찰할 수가 있다”고 됐던 것을 전원위원회에서 심의할때 일부 의원들이 '감찰'이라고 하면 정부의 큰 부정과 범죄행위를 조사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만큼 '감사'로 바꿀 것을 제의, 그대로 통과됐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구미 선진국의 국회가 갖고 있는 국정조사권 외에 감사권을 가짐으로써 정부를 감독하는 양대장치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국정감사는 1950~1960년대에 큰 위력을 발휘했다. 당시 국회는 해마다 한차례 감사는 너무 적다고 보고 매년 정기국회 전반부에 실시하는 일반국정감사 외에 국정운영에 중대한 문제가 야기되면 수시로하는 특별감사로 세분화 했다.

1960년대 후반 국회는 사립대학 운영과 외자도입의 부정을 캐기위한 사학특감, 외자도입특감을 열어 국민으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당시 사학특감서 여야의원들이 “사립대학교의 재단들이 가난한 농부의 자제가 소와 논밭을 팔아낸 등록금으로 우골탑(牛骨塔·학교건물)을 짓고 부정 축재한것 아닌가”라고 추궁하자 지금도 교수인 K대학교의 C총장이 “왜 우리를 도둑으로만 보는가? 우리 나름대로 고등교육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며 답변대에서 눈물을 펑펑 쏟아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국정감사는 기관장들과 공무원들에게는 염라대왕의 몽둥이처럼 공포의 대상이 됐던 것이다.

오래전부터 정부의 이곳저곳을 마구 파헤치는 국정감사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유신을 단행할 때 유신헌법에서 국감제도를 삭제했다. 공무원들은 박수를 친 반면, 국회는 졸지에 힘을 잃어 꽁지빠진 닭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국회가 무기력증에 빠져있는 동안 정부의 권한은 날로 막강하고 오만해지는 한편, 권한 남용과 예산유용 등 부패와 부정이 더욱 늘어났다. 1987년 6·10 민주항쟁_6·29 선언으로 여야가 합의개헌을 하면서 국감제도는 16년만에 부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매년 정기국회 벽두, 20일 간의 국정감사기간동안 연일 비리·실정·국정운영의 문제가 꼬리를 물고 터지면 국민의 시선이 모아지고 정부는 초긴장상태에 돌입한다. 사실 정부를 긴장시킨 것만으로도 30%이상 감사의 효과를 봤다고 할 수 있다. 공무원들이 신랄한 감사때문에 평상업무를 볼 수 없다는 불평은 말도 안된다. 국민이 정부 각 기관의 권한과 예산운영의 적정여부를 살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다만 의원들이 마치 대목을 만난듯 골탕먹이기 위해 200~300건의 자료 요청을 하는가하면 목에 힘을 주면서 호통으로 일관하고 자기 PR을 위해 근거없는 폭로등 언론 플레이, 연고지·연고인들의 봐주기 감사, 그리고 각 기관의 증언과 자료제출 기피, 엉성한 답변 등은 국감을 부실감사·껍데기감사로 만들고 만다.

올해는 대통령선거로 100일간의 정기국회를 70일간으로 단축키로 하면서도 어제부터 시작된 국감일정은 20일간을 그대로 유지했다. 하지만 선거를 의식해서 한나라당은 김대중 정부의 각종 실정과 비리, 국정의 난맥상 파헤치기를, 민주당은 이회창 후보를 겨냥한 병풍(兵風)공세로 벌써부터 감사가 폭로전, 힘겨루기, 상대당 상처내기 등 뜨거운 정쟁의 장이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각 당이 당리당략을 떠나 차분하게 확고한 증거·자료를 바탕으로 정책감사, 국익과 민생을 위한 감사를 하지 않고 마구잡이 폭로와 자기 PR의 운동장으로 변질시킬 경우, 부실감사와 껍데기감사는 불을 보듯 뻔하다.

국민들은 각 당의 성실한 감사자세 여부를 장차 투표때 참고함으로써 의원들을 감사해야 할 것이다. <이성춘 (언론인·전고려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