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추석 한가위를 맞이하여 무려 3천만명의 민족대이동이 있었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귀성객들은 친지, 이웃들과 더불어 많은 이야기 꽃을 피우며 정담을 나누었을 것이다. 태풍으로 수해를 입은 수재민에 대한 위로에서부터 부시 미국 대통령의 대이라크 공격설까지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는 다양한 주제들이 따스한 가을 햇살 아래 안주 삼아 이야기되었을 것이다.

이런 다양한 화제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오는 12월 대선 후보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때문에 12월 대선에 출마하는 후보자들과 정당들은 추석을 전후하여 형성된 민심에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제로 92년, 97년에 실시된 두차례의 대선에서 민족대이동이 있은 추석때 형성된 후보들에 대한 여론이 12월 선거일까지 연결된 것으로 나타나 후보자나 정당에게 추석 민심의 향배는 대선 승패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

이번 추석 때도 지난 선거때와 같이 후보자들의 민심을 잡기 위한 요란한 행보는 변함없었다. 재래시장, 수해현장, 태릉선수촌, 장애시설 등으로 동분서주하는 후보자들의 민심잡기 행태는 각양각색이다. 자신만이 국가를 위하고 또한 서민만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는 지도자로 부각시키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공통된 단 하나의 목표는 '추석 민심이여 나에게 오라'일 것이다.

추석 민심을 분석하는데 있어 97년 대선때의 상황과 몇가지 점에서 유사하다. 우선 97년 추석은 9월16일이었기 때문에 이번 추석일인 9월21일과는 시간적으로 비슷하다. 당시 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는 5월19일 일찍이 김대중 총재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여 일사불란한 후보 중심의 선거전략을 수립하였다면, 현재 한나라당 역시 지난 5월10일 전당대회에서 이회창 후보를 조기에 확정, 선거운동 체제를 갖춘 것도 유사하다.

여당의 상황도 당시와 유사하다. 대통령이 집권당 총재를 탈당한 시기가 당시보다 상당히 빠르나,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DJ와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또한 선출된 후보의 지지도가 하락한다고 당내분이 야기되면서 대안 모색의 움직임과 더불어 이미 일부 의원이 탈당 또는 탈당을 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대선전에 민주당이 분열될 가능성이 농후한 것 또한 당시 여당과 비슷하다. 당시 신한국당이 조순씨의 민주당과 합당하여 11월 말 한나라당으로 당명을 변경한 것과 같이 노무현 후보도 선거에 임박하여 다른 정당과의 합당을 통한 당명 변경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제3후보의 대두 상황도 제15대 대선때와 유사하다. 97년 신한국당 경선에서 패배한 이인제 당시 경기지사는 추석을 사흘 앞둔 9월13일 신한국당을 탈당,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였으므로 지난 17일 대선 후보 출마를 공식 선언한 정몽준 의원과 추석때 민심을 잡기 위한 전략은 비슷하다.

물론 97년 전혀 다른 정치상황도 많다. 한국정치를 40여년 동안 좌지우지했던 3김은 이번 대선에서 영향력이 거의 없다. DJ는 두아들의 구속으로 이미 영향력을 상실했고 YS는 단지 전직 대통령일 뿐이다. 97년 DJP의 위력을 발휘, 실속을 챙긴 JP는 정몽준 의원과 새로운 정치연합을 모색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자민련 의원들의 생각은 JP와 다른 것 같다.

그러면 이번 추석에 가족들이나 친지들과 나눈 정담에서 과연 어느 후보가 추석 민심을 잡았을까. 이번 추석 민심으로 어떤 후보가 가장 피해를 보고 또한 이득을 보았을까. 예년과 같이 이번 추석에 형성된 민심이 오는 12월까지 지속될 것인가. 앞으로 남은 3개월 동안 추석 민심을 변화시킬 새로운 쟁점이 있다면 과연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결코 간단치 않다. 아직도 병풍, 신북풍, 정풍 등 많은 바람의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더구나 최근 정치권에서 사생결단식의 막가파 정치가 횡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 누가 어떤 유탄에 희생양이 될지 모른다.

지난 97년에는 추석 직전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인제 후보로 인하여 추석을 전후해 유권자의 10%가 지지 후보자를 바꾸었다고 하는데 이번 추석 민심에서 정몽준 의원의 출마 선언이 이회창, 노무현 어느 후보에게 타격을 줄지. 또는 정치권에 식상한 유권자들의 무관심으로 지금의 대선 판세가 그대로 지속될 것인지. 민심이 천심이라 했는데 얼마나 바뀌었는지 자못 궁금하다. 곧 발표될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를 지켜보자. <김영래 (아주대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