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거리를 걷다보면 3불증(3不症)에 자연스럽게 노출돼 있음을 느끼게 된다. 3불증이란 불편(不便)하고, 불쾌(不快)하고, 불미(不美)스럽다는 의미의 축약이다. 거리도 일종의 병을 앓고 있다는 얘기인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오랫동안 이런 증상에 길들여 왔기 때문에 “도시공간이란 으레 그런 것이지…” 하고 무신경하게 지나쳐 온 것이 사실이다. 거리는 사람이나 차량의 흐름을 원활히 해주기 위한 공간이다.
동시에 보행은 단순히 앞만 보고 곧장 걷는 행위가 아니라 산책하고, 시간을 보내고, 물건을 사는 등 다양한 활동 공간의 개념이다. 소설가 신경림씨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든 줄 알지만, 길은 순순히 사람들의 뜻을 좇지는 않는다' 는 속 깊은 글귀를 남겼다. 따져보면, 원래 길이란 사람이 다니기 위해 만들어 놓았다. 그러므로 사람을 위해 제 역할을 해야하지 않겠는가? 3불증의 현장을 한번 진단해보기로 한다.
거리 곳곳의 쓰레기를 치워간 흔적들에서는 악취가 풍겨난다. 숨을 멈추고 재빨리 그곳을 통과해야 한다. 노상 적치물, 지주간판, 가판대 등은 누추하고 찌그러진 모습으로, 제멋대로 보도면을 점령하여 서 있는 경우가 많다. 보행자들은 이것들을 피해 다니기에 바쁘다. 또한 건물마다 빼곡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광고물은 어떠한가? 도시경관의 가장 큰 적(敵)일 뿐만 아니라 보행안전에도 위해 요소가 된다.
어느 곳을 가나 단일 수종의 가로수만 도열해 있고 그늘 있는 쉼터를 찾아보기란 어렵다. 옛날 그 좋던 도심의 그린벨트, 쥐똥나무로 된 수벽은 군데군데 훼손되어 추한 꼴을 드러낸다. 수벽이 사라진 자리에는 스테인리스 레일로 대치되어 차가운 쇳빛을 내뿜고 있다.
보도면은 울퉁불퉁하고 비가 오면 물이 고이고 튀며, 다닥다닥 붙어있는 맨홀 뚜껑은 웅크린 두꺼비처럼 흉측스럽다. 이런 길에서 휠체어가 다니기는 어렵고, 유모차들도 사라진지 오래이다. 한편 보도면은 거리의 피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한결같은 회색빛 콘크리트블록은 마치 생명감 없는 얼굴 화장을 보는 것 같다. 보도면를 좀먹고 있는 차량진입로는 왜 그리 많은지? 복병처럼 튀어나오는 차량들을 조심해야 한다. 미관을 위해 후퇴시킨 공간에는 차량이 올라가 있어서 더욱 경계해야할 것이다.
횡단보도에는 반쯤 건너기도 전에 보행신호등이 깜박거리기 시작하고, 쫓기는 듯이 건너는 노약자들의 모습이 안쓰럽게 보인다. 그런가 하면 통학로 마저도 주차우선정책으로 인해 어린이들은 길 가운데로 몰려다니고, 빵빵거리는 차를 피해 지그재그 발걸음을 해야 한다.
도시발전의 상징처럼 생겨나는 넓은 도로는 지역사회의 연대감을 여지없이 갈라놓는, 분단의 강처럼 흐르고 있다. 차도는 광장처럼 넓은 반면, 보도는 들러리로 설계한 듯 협소하기만 하다. '길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차'라는 말이 실감난다.
한 도시의 인상을 생각할 때 최초로 부각되는 것은 거리라고 한다. 사람을 잡아끄는 외국 명도시(名都市)의 매력은 다름아닌 그곳 거리의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3불증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광역차원에서 대책이 있어야 한다. 보행환경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함께 장기적인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지금 인천은 꿈꾸고 있고, 꿈은 국제화된 도시, 경쟁력 있는 도시일 것이다.
경제적, 산업적, 관광 문화적 마스터플랜은 이미 서있고 추진 중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도시의 국제화, 경쟁력은 반드시 먼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발 밑 현실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인천이 싸구려 도시, 조악한 이미지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어서는 안된다. 사람들은 인간미와 친환경적인 섬세한 배려가 깃든 도시를 원하고 있다. 인천을 편리하고, 쾌적하고, 아름다운 거리로 변화시켜서 사람을 매료시키는 품격있는 도시로 만들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서둘러야 할 것이다./오성배(인천 동구 문화공보실장)
도시 보행환경의 진단과 치유
입력 2003-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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