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균형발전특별법법에 이어 신행정수도특별조치법이 국회에 제출됐다. 이 두 법 모두 그야말로 '수도권을 죽이는 법’이다.

궁극적으로 국가의 경쟁력을 나락의 구렁텅이로 떨어뜨리는 법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주민들은 전체적으로 무관심한 것 같다. 그러다보니 정치권은 충청권 표를 의식해서 반대를 하지 못하고 있다.

수도의 이전은 국가의 미래와 관련된 중대한 과제다. 그러나 지금의 수도 이전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논의를 거쳐 도출된 것이 아니다. 지난 대통령선거과정에서 충청권의 표를 얻기 위해 급작스럽게 돌출된 것임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물론 박정희 대통령 당시 한때 행정수도의 이전이 고려됐지만 당시 구상은 통일이 될 때까지 안보적 차원에서 임시적으로 행정부를 이전한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남북한관계는 그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다.

수도 이전에 약 46조원이 들 것으로 발표됐다. 더구나 앞으로 남북통일이 되면 그야말로 남북균형발전에 의한 통합차원에서 북한지역으로 수도를 옮겨야할지도 모른다. 다시 엄청난 돈을 써야할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의 어려운 경제여건에서 수도 이전이 그렇게 절체절명의 과제인가?

수도 이전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광범위한 의견 수렴과 합의과정을 거쳐야한다. 그러나 이번에 제출된 법에는 수도 이전의 국민적 공감대 조성과 합의 도출을 위한 절차가 빠져있다. 국민투표에 의한 합의에 기초하지 않고 졸속과 단견으로 추진되는 경우 정권이 바뀌면 일관성을 가질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실질적 임기는 2007년 상반기에 끝난다. 수도이전을 위한 본격적인 사업이 시작되기 전이다. 다음 대선에서 어느 후보라도 수도이전계획 백지화를 공약으로 내세울 수 있다. 그 후보가 당선되는 경우 수도이전이 백지화 되면서 그때까지 소요된 수천억원 내지 수조원은 헛돈이 될 것이다. 대통령의 정치적 공약을 마치 법처럼 무조건 수용하면서 따르는 것은 판단력 없는 단세포적 행동이다.

정부가 제출한 법에 의하면 새로운 수도를 대전시, 충청북도 및 충청남도 지역 중에서 지정한다고 명시했다. 이전 예정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다른 도시들과의 비교우위에 대한 객관적 조사도 없었다. 충청권으로의 수도 이전이 국토균형발전에 결정적으로 공헌할 것이라는 말인가? 고속철도로 불과 30~40분 거리의 서울~충청권 축을 따라 수도권이 확산되면 지금보다 더 심한 경제력 집중과 교통혼잡을 유발할 것이다. 더욱이 산업의 효율성을 저하시키고 입지를 왜곡시켜 호남과 강원도 지역의 발전 잠재력마저 송두리째 흡수해 버릴 가능성이 높다. 수도를 이전하여 낙후지역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한다면 오히려 호남이나 강원도로 옮기는 것이 더 논리적이다. 충청권이 서울보다 좋고 강원도나 호남보다 더 좋다고 주장할 수 있는 논리가 있다면 이는 정치적 논리뿐이다.

수도 이전으로 균형발전이 이뤄진다는 생각은 너무나 순진한 발상이다. 비록 수도이전의 문제가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고귀한 이상에서 출발했지만, '국가 경쟁력의 하향 평준화'라는 참담한 결과로 나타날 것이 명약관화하다. 진정으로 국가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하고자 한다면 이는 수도권을 죽여서가 아니라 중앙정부에 집중된 권한을 지방에 이양하는 지방분권화가 가장 빠른 길이다. /전일수(인천대 교수·전 교통개발연구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