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8월 15일 수원군 수원읍이 시로 승격하여 오늘의 수원시가 됐다. 당시는 동일 시·군(市·郡)명을 병용치 못하게 하여 수원군은 화성군이 되고 현재는 화성시가 됐다. 이와 함께 지금의 '영통'은 당초 수원군 태장면 영통리에서 화성군 태장면 영통리로 변경됐다. 하지만 태장면 일대가 다시 수원시에 흡수되면서 오늘의 '팔달구 영통동'이 됐다.
수원시는 오는 11월 24일을 기하여 구(區)를 하나 더 신설하는데 명칭을 '영통구'로 한단다. 소도 웃을 일이 벌어진 것이다. 수원시는 이미 망포동 일대의 몇개 동을 묶어 팔달구 태장동사무소를 개설한바 있다. 그러므로 신설구의 명칭은 태장구가 돼야 마땅함에도 '영통'이 많이 알려졌으니까 영통구로 하는 것이 좋다고 영통구로 한다는 것이다. 자식이 유명해졌다고 애비 문패위에 자식문패를 올려 단 꼴이다. 그럴 경우 애비를 몰라보는 자식을 가리켜 '후레자식'이라 한다.
지금의 부천시 소사동은 '부천군 소사면'에서 '소사읍'이 되고 부천시로 승격되면서 소사읍이 '소사동'이 된 것이다. 당시 '소사'하면 복숭아 고장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소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알려진 곳이었지만 부천은 최근에야 알려진 지명이다. 그럼에도 부천은 '소사시'가 아닌 '부천시'를 고수했다.
태장구가 아닌 영통구로 하는 수준의 행정이라면 지금의 부천시는 당연히 소사시가 됐어야 한다. 영·호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왜 그랬을까? 모태가 어디냐는 데서 원칙과 순리를 따라야하기 때문이다. 사천시는 사천현에서 사천군이 되었다가 수남면과 문선면을 합하여 삼천포면을 설치, 그후 삼천포면이 읍을 거쳐 시로 승격하였다. 그리고 1995년 5월 삼천포시와 사천군이 합쳐 도농복합형의 통합시가 되면서 '사천시'로 개칭하였다.
익산시도 익산군 익산면이 익산읍으로 승격하면서 1931년 이리읍으로 개칭하였다. 1947년 이리읍이 부로 승격하고 익산군에서 분리, 1949년 이리읍이 시로 승격, 1995년 5월 이리시와 익산군이 통합되어 도농복합형의 익산시로 개편했다. 인지도가 훨씬 높은 이리시란 명칭과 삼천포시란 명칭을 배제한 것은 모태를 우선시 했기 때문이다.
부천시, 사천시, 익산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산업사회 발달은 부의 축적을 이루었으나 많은 부작용도 생겼다. 배금주의 사상의 만연으로 역사와 전통이 알게 모르게 파괴되고 있다. 그런 중에도 수원시는 '효의 도시'임을 강조하면서 많은 이들의 호응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전통적으로 한국은 효(孝), 중국은 의(義), 일본은 충(忠)을 숭상해 왔다. 전국 방방곡곡의 웬만한 시골마을에 가면 효의 마을이 있다. 그래서 수원은 정조와 관련하여 개혁의 도시, 개혁의 고장이라 함이 더욱 좋겠다는 의견도 많다. 그런데 개혁은 좀 딱딱하니까 효의 고장, 효의 도시라고 하고 있다.
효냐 개혁이냐의 선택은 다수를 따르더라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원칙이지만 아무 것이나 다수결로 하는 것은 아니다. 모태를 무시하는 다수는 있을 수 없다. 아무리 다수가 원한다해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수원시의회의장의 인기가 없으니 부의장이 수원시의회를 대표하란다고 할 것인가? 부시장이 시장보다 인기와 능력이 있으니 부시장이 시장역할을 하란 다면 그렇게 할 것인가?
늦었다고 생각할 때 시작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고 한다. 수원시는 지체없이 잘못된 구청의 명칭을 바로잡아야 한다. /유동준(자유기고가)
“태장동에 영통구라니”
입력 2003-1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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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13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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