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일봉'하면 정치인이 먼저 떠오른다. 국회의원이나 3부요인, 지자체장 등이 수해 현장을 방문하거나 이웃돕기 성금을 낼 때면 으레 흰 봉투를 하나 건네는데 그게 바로 금일봉이다.
 
유명 정치인일수록 어려운 이웃을 위해, 아니면 특정 모임이나 집회에 참석했을 때 봉투를 건네는 것은 오랜 관행이었다. 특히 연말연시이웃돕기 성금모금 캠페인이 펼쳐지면 각 언론 매체마다 금일봉이 줄을 이었다.
 
금일봉(金一封)은 말그대로 '돈을 넣은 봉투 하나'다. 굳이 사전적 의미를 밝힌다면 '금액을 밝히지 않고 봉투에 넣거나 종이에 싼 채로 주는 돈'을 말한다. 공연히 생색내는 것같아 멋쩍거나 그저 조그만 성의 표시라는 의미로 전달된 따뜻한 마음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금일봉하면 작은 의문을 갖는다. 그 봉투엔 얼마가 들었을까? 왜 금액을 밝히지 않는 걸까? 하는 따위다.
 
중진의 K국회의원은 매년 연말이면 성금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며 지금도 고개를 내젓는다. 10여개의 신문사마다 성금기탁을 자사에다 해달라고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금일봉이 없었다면 아마도 기부금에 치어 집안이 거덜났거나, 손작은 국회의원으로 내몰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금일봉은 훌륭한 피난처였다. 따지고 보면 K의원에게 금일봉은 그에게 일석삼조의 역할을 해주었다. 금액 부담은 줄이고, 모든 신문사에 생색을 낼 수 있으며, 더불어 세상 사람들에게 '마음 따뜻하고 통 큰 정치인'으로 홍보하기에 제격이었던 까닭이다.
 
금일봉과 대조가 되는 게 '익명의 봉투'다. 금일봉이 기탁자의 이름은 밝히되 금액은 노출하지 않는 것이라면, 익명의 봉투는 반대로 금액은 밝히되 이름은 알리지 않는 것이다.

지난 12월9일 서울지하철 시청역앞에서 이웃돕기 성금을 모금중이던 구세군 관계자들은 깜짝 놀랐다. 누군가가 무려 3천753만원 상당의 수표와 현금뭉치를 자선냄비에 넣었기 때문이다. 돈뭉치를 밀어넣는 중에 놀란 자원봉사자가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며 말렸지만 50대 남자는 두말않고 사라졌다.
 
사실 우리 주위엔 남몰래 이웃을 돕는 '익명의 기부자'는 많다. 그들은 남을 도우면서도 혹시 상대가 부담을 느끼지 않을까, 내가 내는 성금이 너무 적지 않을까 오히려 미안해하는 사람이다.
 
자선음악회나 방송연계 모금행사 후 모금함을 정리할 때면 이름을 쓰지 않은 봉투가 항상 섞여있다. 성금기탁자 대열에 끼어 반드시 한마디 인터뷰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분들을 생각하면 익명의 봉투에 그저 숙연할 따름이다.
 
공동모금회가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벌이는 '동전하나 사랑더하기' 모금캠페인에서 모금함에 동전을 던지고 지나는 운전자들도 익명의 기부자다. 은행 창구나 동사무소에 비치된 '사랑의 열매'를 하나 달고 모금함에 성금을 담는 분들도 익명의 기부자다.
 
요즘 신문을 보면 '금일봉'을 찾아보기 힘들다. 몇 년 전부터 언론들이 금액을 밝히지 않은 봉투-금일봉은 게재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금일봉 퇴출은 '봉투에 얼마가 들었을까' 하는 쓸데없는 고민을 없애줬다. 성금의 투명성에서도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런데 엉뚱한 궁금증이 하나 생겼다. 금일봉이 없어지면서 성금기탁자 명단에 정치인들의 이름까지 함께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선거철이어서 정치인들이 성금을 내는 것조차 선거법에 저촉되기 때문일까?
 
기업은 기업대로, 개인은 개인대로 누구나 연말이면 한번쯤 마음을 비우고 겸허한 자세로 이웃을 생각하게 마련인데 정치인들은 왜 그 대열에 없을까.
 
금일봉에 대한 다소 오해가 있다 하더라도 어려운 이웃 입장에서는 유명 정치인들의 명단까지 없어지는 것보다는 '금일봉'이라도 그리운 시점이다. /박상용(경기도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