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노창현 선생이 별세했다. 생전에 온화함과 검소함을 잃지 않던 선생의 소박한 인품이 회상된다. 선생은 돌아가시기 전에 고향인 강화 땅에 마련해 둔 묘지용 부지 600여평을 천주교재단에 기증하고, 본인의 시신은 화장해 천주교 납골당에 안치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노창현 선생은 지난날 인천의 최대현안이었던 선인학원에 대한 시립화 추진시기에 관선 이사회의 이사장을 맡고 있었다. 시립화를 저지하려는 세력에 의해 끊임없는 협박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용기와 신념으로 시립화 과정에서 이사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함으로써 선인학원 14개 학교의 시·공립화를 성공시키는데 기여한 공로는 역사에 남을 일이다. 1년여 전에는 인천의 원로인 김동순 선생이 세상을 떠나셨다. 내가 이 분들의 죽음에 임하여 필을 들게 된 것은 우리가 존경하는 훌륭한 원로들이 한 분 두 분 소리없이 세상을 떠나심을 안타깝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천에는 '1·3(일삼)회'라는 모임이 있다. 앞에서 이야기한 노창현·김동순 선생 등이 회원으로 있었기에 연계하여 1·3회를 말하고자 한다. 1·3회는 10여년 전인 1993~1994년 당시 인천시가 역점적으로 추진하던 선인학원 시립화문제, 송도신도시착공문제, 인천시의 광역화문제 등 벅찬 현안사항에 대하여 지역의 원로들이 힘을 모아 발전적이고 성공적으로 추진되도록 일조하자는 뜻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1·3회'라는 명칭은 회원 수가 13인이기에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오랫동안 시장으로 재임해 온 나는 1·3회로부터 1년에 두 번 정도 초청을 받아, 훨씬 연배가 높으신 분들이지만 이 분들과 격의없는 만남과 대화를 가져왔다.
 
내가 아는 당시 1·3회원들의 면면을 보면, 이회림 동양화학회장, 고일록 YMCA이사장, 김관철 지성병원원장, 김동순 인천문화원장, 김숙현 국회의원, 김창황 인천예총 회장, 노창현 인천시립대학교운영위원장, 심명구 선광공사회장, 이기성 영진공사회장, 이영호 의학박사, 한만호 인천노인회연합회장, 황철수 남해토건 사장 등이 참여했다.
 
1·3회에는 이북출신과 충남출신이 많다. 그것은 남북분단의 비극과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새로운 땅 인천에 정착해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꿈과 포부를 실현한 삶의 역사를 의미한다. 10여년 전 70대 중반의 노년기에 서 있는 이들이 1·3회 모임을 결성한 것은, 일생을 통해 뼈저리게 느껴온 조국에 대한 사랑(애국심) 그리고 당신들을 세워준 땅 인천에 대한 사랑(애향심)에서 였다고 본다. 지금 이들 중 반은 타계하셨고, 반은 생존해 계시다. 이 분들은 일생을 통해 큰 일을 이룩했지만, 자신이 한 일을 자랑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으며, 늘 겸손하다. 재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늘 근면·검소하다.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자존심을 생명같이 생각한다. 그러하기에 이 분들의 움직임에는 소리가 없지만 무게가 실려 있다. 작고한 분들이나 생존해 있는 분들이나 흠모와 존경을 받고 있다.
 
인천에 1·3회가 있다는 것은 자랑스럽고 명예로운 일이다. 인천발전을 위해서도 원로들의 역할은 중요하다. 지역 원로들의 사심없고, 충정에 찬 1·3회 정신은 후진들에 의해 앞으로도 계승되어야 한다. /최기선(인천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