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後漢) 헌제(獻帝)의 건안 24년, 위(魏)나라의 조조가 한중으로 유비를 치러 친히 정벌에 나섰다가 제갈량의 모략에 빠져 군량미를 많이 잃었다. 이 상황에서 공격하자니 군량미가 모자라 싸움이 어렵겠고 그렇다고 물러서자니 체면이 서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저녁상에 계륵(鷄肋)이 반찬으로 들어왔다. 그 계륵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는데 그의 부하가 그날 밤의 암구호를 정해달라고 찾아 왔다. 이때 조조는 아무런 생각없이 ‘계륵’이야 ‘계륵’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그날 밤의 암구호는 계륵으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양수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매우 비범한 사람이었다. 양수는 그날의 암구호가 계륵이라는 말을 듣자 곧 짐을 싸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이 궁금하여 그 이유를 묻자 그는 대답하기를, 원래 닭갈비는 먹을 것은 없으나 그렇다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처럼 조조가 한중 땅을 계륵처럼 생각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조조는 자신의 마음을 들킨 것에 화가 나 그만 양수를 죽이고 말았다. 그렇지만 얼마가지 못하고 결국 철군할 수밖에 없었다. 조조는 그때 가서야 양수의 말이 옳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로부터 계륵이라는 말은 도움이 되지 못하면서 버리기는 아까운 것, 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필자는 몇 년 전 해외 학술답사를 하던 중 한국에서 이민을 떠난 한인회장 한분을 만났다. 그분에게는 고등학교를 다니는 딸이 있는데 공부도 잘하고 모범적인 학생이었다는 것이다. 방학을 맞아 한국의 할머니 댁을 방문한 이후부터 다시는 한국에 가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귀고리와 긴 머리로 한국에 갔을 때, 불량학생으로 오해를 받았던 심리적 충격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접하면서, 아직도 우리 교육현장에는 계륵이 많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과거사 청산 작업이 한창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면 할 것 없이 친일에 참여했던 모든 인사들이 전방위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대학가의 친일청산은 고려대학을 시작으로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라면 곧 중고등학교에서도 일제잔재 청산운동이 벌어질 것 같다. 만일 중등학교에서 일제의 잔재청산이 이루어진다면, 아마도 일부 사립학교들의 설립자나 이와 관련이 있는 조각물 정도가 해당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중고등학교에서의 일제잔재 청산의 초점은 생활지도에 맞추어질 것으로 본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많은 학생들이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거치면서 자연스러웠던 머리 모양새가 중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짧게 삭발해야 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두발단속 등이 일제잔재의 전형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등교시간마다 벌어지는 진풍경들을 볼만큼 보아왔다. 이제는 학생들의 자발적인 자기 관리에 맡겨 볼 때도 되었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이 자기 차림새에 스스로 책임질 수 있도록 여지를 만들어 주자. 분명한 것은 등교 길 학생들의 머리에 고속도로를 낼 정도의 인식으로는 미래지향적인 교육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쯤에서 두발과 용의복장 단속이 더 이상 우리교육의 계륵이 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한병선(배화여대 외래교수·교육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