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부가 출범을 앞두고 벌써부터 저항을 받고 있다. 민주당 대표의 입에서 '독재개혁'의 발언이 터져 나왔고, SK의 편법상속에 대한 검찰 수사를 계기로 향후 재계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당선자가 국민들에게 약속한 것이고, 개혁의 첫 번째 관문이기도 한 정치개혁과 재벌개혁이 순탄치 않을 조짐이다. 5년 전 비슷한 상황에 놓였던 김대중 대통령은 역설적이지만 IMF의 시나리오를 지렛대로 삼아 공세적인 개혁을 펼 수 있었다.

이와는 달리 노무현 당선자는 소수 여당이라는 핸디캡에다 자신의 친가인 민주당과도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할 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의지할 수 있는 지주는 오로지 자신과 국민뿐이다. 대통령도 국민도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현실이다.
 
혁명은 하룻밤에 모든 것을 바꿔 놓을 수 있지만, 개혁은 단계를 거치면서 역풍을 헤쳐나가야 한다. 개혁은 한 세대 혹은 그 이상 걸릴 수도 있다. 낡은 제도를 거둬내고 새로운 제도와 룰을 세우는 과정에서 막대한 고통과 희생이 따르게 마련이다.

게다가 권력과 부, 그리고 영향력을 둘러싼 신구 세력간의 권력투쟁도 치열하게 벌어진다. 권력과 부를 놓지 않으려는 것은 정치권이나 재계만이 아니다. 자신들의 독점세력을 향유하고 싶어하는 것은 언론이나 노조도 마찬가지이다.

그런가 하면 정권교체는 바랐지만, 변화를 두려워하는 국민도 있다. 개혁을 하되 기존의 것은 그대로 놔두라고 요구하는, 말하자면 하나의 가슴에 두 개의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렇듯 노무현 당선자가 맞서 대결해야 할 개혁저항 세력은 한둘이 아니다.
 
때문에 이 같은 저항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용의주도한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한 번에 급브레이크를 걸기 보다는 구체제의 관성과 타성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개혁정책의 선로를 확실하게 깔고, 우선순위와 완급을 정해 놓아야 한다. 그리고 개혁에 따른 고통과 회생에 대한 대책도 함께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개혁의 효과를 과다하게 추정해서 국민들로 하여금 미리 개혁의 과실을 따먹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개혁은 하나의 터널을 지나는 과정이기 때문에 맞은편에서 불빛이 보이기 전까지는 고삐를 놓지 말아야 한다. 또한 심리적인 관성을 변화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국민들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을 살펴야 한다. 희망이 좌절되면, 돌아선 민심을 되돌리기가 매우 어렵다.
 
국민참여 정부의 개혁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도 개혁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무장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소위 '한국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병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하고, 그에 따라 올바른 처방과 약을 준비해야 한다. 진단과 처방만으로는 개혁은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 말하자면 개혁정책의 이론적 근거와 실천과정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실천을 통해 검증되지 않은 이론은 진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 국민의 정부가 남긴 교훈이다.
 
이제 각 분야에서 구체제가 와해되고 있는 한국은 21세기형 국가의 틀을 짜는데 서둘러야 한다. 이것이 노무현 당선자 앞에 놓인 최대의 과제다. 노 당선자는 일단 참여정치의 문을 열어 놓았다. 실험이자 도전이며, 개혁의 성패를 좌우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국민적 합의를 개혁의 뜀틀로 삼겠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실제로 개혁을 가로막고 있는 바리케이드를 걷어내려면 국민의 합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비판을 먹고 성장을 한다. 따라서 진정한 국민적 합의는 다양한 비판의 목소리를 한데 모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개혁을 두려워하는 사회적 다수의 마음을 사로잡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선거에서는 정치적 다수의 표심이 운명을 결정하지만, 국정에서는 사회적 다수의 민심이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이인석(인천발전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