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이후 우리나라의 명칭을 생각해 보기 전에 통일 이후 '대한민국'의 이름을 계속 고집하여야 하는가의 문제부터 짚어보자. '대한'이란 이름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해있던 고종이 독립협회 등의 강력한 진언을 받아들여 1년만에 환궁한 1899년 10월2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국호를 '대한제국', 연호를 '건양(建陽)'이라고 고치고 우리나라가 자주 독립국임을 내세워 선포했다. 고종은 “우리나라는 본시 한(韓)의 땅이었기에 '대한'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韓)'은 우리나라의 역사 무대였던 자리적 강역의 범위를 너무도 축소시켜 놓은 부족한 나라 이름이라는 생각이다. '한'하면 삼한(三韓) 시대를 연상시키며 일반적으로도 한강 이남을 뜻한다. 우리나라의 드넓었던 역사적 활동 범위를 반도의 남쪽으로 한정시키는 어이없는 나라이름이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를 세운 분들이 민주 헌법을 제정하면서 '대한제국'을 '대한민국'으로 바꿨다. 이후 1948년 남쪽만의 단독 정부를 세우면서 '대한민국'으로 계승한 것이니 제고되어야 할 나라이름이다.
'조선'을 나라 이름으로 채택하자고 주장하면 친북주의자로 생각되겠지만 우리 나라의 역사에 등장했던 가장 유서 깊고 오래된 이름이다. 우리 민족은 오랜 옛날에 광명의 밝은 빛을 찾아 동방으로 옮겨 오늘날의 백두산에 터를 잡았으니 그 삶터를 일컬어 조선이라고 했다. '조선'은 배달 겨레가 찾아간 해뜨는 아침의 땅으로서 이상의 나라요, 꿈에 그리던 이상향이었다. 그러므로 역사적 의미나 어떤 면으로서도 나무랄데 없는 우리 민족의 최고·최대·최선의 국호라는데 이견이 있기 어렵다.
그러나 조선의 빛나는 이미지는 훗날 태조 이성계에 의해서 먹칠이 됐다. 태조와 그 신하들이 그들의 국호를 정하는데도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선'과 이성계의 출생지인 '화령' 두 가지 중 골라주기를 고개숙였으니, 추태가 담겨진 모습을 연상케하는 이름인 것이다. 더욱이 일제는 '조선총독부'라는 명칭으로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다스렸으니 나라 이름으로서의 '조선'은 망국의 비운을 맛본 추악한 모습까지 깃들여져 있다.
그러므로 통일 후의 나라 이름은 '고구려'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고구려는 동북아의 최강국으로 700년 동안이나 만주 전체를 다스렸던 우리 역사의 자랑인 나라였다. 고구려의 조상들은 단군 조선의 영토까지도 복원하려고 노력했다. 고구려인들의 기상은 용맹성, 참을성, 흙사랑, 뭉침성, 경건성, 밝음성, 근면성, 개척정신과 주체성을 자랑한다. 중국이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둔갑시키고 있다. 우리의 나라 이름을 '고구려'로 하고 그 땅을 찾겠다고 나서야 한다.
'아사달'이란 이름도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 민족이 고조선을 세운 역사의 출발지요, 후에 수도로 정한곳의 이름을 '아사달'이라 했다. 아사달의 뜻은 '해뜨는 아침의 땅'이다. 그리고 순수한 우리말로 성지(聖地)라는 뜻도 깃들여져 있다. 고조선으로부터의 긴역사를 자랑하고 선조의 숨결이 남아있는 그 땅의 복원의 뜻을 간직하는 좋은 우리나라의 이름이 될 수 있다는 견해다.
어쨌든 현시점에서 남과 북이 함께 우리나라의 이름을 새롭게 짓는 일에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면서 조상들의 나라를 되찾자는 뜻이 하나가 되는 일은 남북이 하나로 뭉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미리 세계사의 무대에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는 국호를 정하고, '국기와 국가는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문제도 남과 북이 공동으로 연구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홍익인간의 정신을 구현하고 고구려의 영광을 되찾는 정신적인 징검다리를 놓는 심정으로 같이 고뇌하여 봤으면 한다. /장영란(민주평통 상임위원)
통일 후의 나라 이름
입력 2004-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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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26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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