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 시대의 일이다. 로마군 지휘관이 아침 점호를 했다. 병사들은 각자 갑옷 가슴받이(breastplate)를 치며 크게 함성을 지른다. 이 때 함성소리가 'integrity'다. 청렴으로 번역하는 단어다. 라틴어 ‘integritas’에서 나왔다. 병사들의 외침은 ‘내 갑옷은 견고하여 혹독한 전쟁도 이겨낼 수 있다’는 상징의 뜻을 담고 있다. 사전적 정의는 wholeness(전체, 완전), soundness(건전, 건강), perfect(완벽)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산 정약용이 쓴 목민심서에서 청렴사상을 엿볼 수 있다. 청백리의 모델을 제시한 '도덕교과서'라 할 만한 이책은 청심(淸心)편에 아래와 같이 기술하고 있다. '廉者(염자)牧之本務(목지본무)萬善之源(만선지원)諸德之根(제덕지근)' 청렴은 목민관의 기본 임무이고, 모든 선(善)의 근원이며 모든 덕(德)의 근본이라는 뜻이다. 청렴의 의미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이 문장은 우리 공직자들에게 사욕없이 청렴하라는 교훈이다.

 역사적으로 동서양의 군대와 공직 사회에서 건전함을 다지는 의미로 쓰여진 청렴 단어가 지난달부터 국가기관 명칭에 등장했다. 지난달 21일부터 종전의 부패방지위원회가 국가청렴위원회(약칭 청렴위·KICAC)로 바뀌게 된 것이다. 국가기관의 명칭을 이처럼 '청렴'으로 변경한 배경에는 언어 관습상 느끼는 몇가지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부패방지'는 부정적 이미지와 후진국 냄새를 풍기는 말투다. 타율적인 느낌이 든다. 방어적이고 소극적이며 어두운 면도 내포하고 있다. 반면 '청렴'은 '부패방지'에 비해 긍정적이고 미래 지향적이며 적극적이다. 자율·능동적인 뉘앙스도 지니고 있다.

 부패방지에 내재된 강압적 어감도 부담스럽다. 가령, 맑은 하늘(선진국)이 있는데 때로 찌든 유리를 약품(형벌)으로 세게 닦아내고 쳐다보려는 움직임이 '부패방지'이고, 비가 내려 저절로 씻겨진 후 열린 문(자율)으로 내다보는 편한 감정이 '청렴'이라면 어떨까. 세계적인 비정부기관(NGO) 국제투명성기구(TI)에서 집계하는 국가 청렴도 조사에서 수년간 1위(10점 만점에 9.7점)를 차지하는 복지국가 핀란드에서는 규정된 봉사료 외에 팁이 없다고 한다. 노점상과 택시도 신용카드로 결제한다. 국회의원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다닌다. 구석구석을 유리알처럼 드러내놓은 생활에 익숙한 나라다. 이에 비해 국제무대에서의 우리나라 청렴도 순위는 낮은 편이다. TI의 부패인식지수(CPI)는 지난해 조사 대상 146개 국가 중 47위권이다. 2003년(133개국 중 50위)보다 다소 개선됐으나 CPI를 처음 조사한 1995년부터 지난 10년간 3.8~5.02점에 머물러 큰 진전이 없는 편이다.

 청렴의 진정한 주체는 국민이다. 청렴은 만민 평등을 부르짖은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연설처럼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민주주의 정신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국민이 청렴 활동에 직접 참여하고, 국민에 의해 부정 부패가 감시되며, 국민을 위해 부패 요인 제거와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청렴위는 이같이 국민 스스로 지향하는 청렴의 길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국제 무대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경제력도 중요하지만 청렴도에서도 선진국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국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국가기관이 주도하는 청렴도 향상은 한계가 있다. 국민 모두가 참여하고 협력해서 청렴 지수를 끌어 올려야 한다./김덕만(국가청렴위원회 공보관·언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