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참으로 빠르다. 공직에 입문한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이 자리까지 왔으니 좋은 말로하자면 리타이(re-tie) 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다. 생전 처음 만나는 사람도 공직자라는 나의 직업을 알아볼 수 있도록 변모해버린 나의 모습…. 어느새 공직세계의 타성에 젖어 버린 것이다. 한숨이 나온다. 모든 사람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정월이면 해서 먹는 가래떡처럼 나도 색깔과 모양이 같아졌다는 얘기다.

 전에 같이 근무하시던 선배들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었다. 결재판이 공중곡예(?)를 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그때는 무슨 생각을 하고 열심히 일했을까. 그때 선배님들은 이렇게 말했다. “선배는 하느님과 동급이다.” 고로 선배들의 마음에 들게 계획을 세우고, 마음에 들게 추진해야 하고, 마음에 들게 결과가 나와야 했다. 그래서 개성이 남다르다거나 독창적인 계획을 입안하면 선택에서 배제되었다. 당시 행정이 발전하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상사가 지시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남보다 빨리 일을 마쳐야 인정을 받았고, 이런 와중에서 상사의 외모와 생각, 행동까지도 닮아야 했던 숨 막히는 세월이었다.

 다윈이 주장하는 '제2의 사회의 진화론'처럼 사람마다 다르게 타고난 지적 수준과 특성과 외모가 보편화 되어가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이러니 처음 보는 사람도 대번에 직업을 알아 볼 수밖에…. 따라서 일이 추진되어 가는 과정도 그랬다. 사람마다 지도력에 의하여 다른 결과가 나타나겠지만, 보편적으로 잘된 것은 상사에게로 공로가 돌아가고 잘못된 것은 아랫사람 탓이었다. 하지만 요즘 젊은 후배들은 개성이 강하고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하다. 그래서 처음에는 거부감도 들지만 자주 보면 사랑스럽고 든든하다.

 요즘은 정책결정에서도 미팅과 대화, 전문인의 자문, 선진지 견학 등 많은 투자가 있어야 한다. 아울러 젊은 공직자들의 인격과 참신한 아이디어, 개성이 존중되어야 정책의 다양성과 행정 기술의 발전이 이뤄지고 시민의 다양한 욕구에 발맞춰 갈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시대를 뒷걸음질치는 동년배들이 있는지는 궁금하지만, 일러두고 싶은 귀한 글을 옮겨본다.

 중국 초나라 왕 항우와 한나라 왕 유방의 싸움에서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나서 결정적인 공을 세운 세 장군을 이렇게 평했다. “작전을 짜서 천리 밖의 적을 물리친 공은 장자방에 있고, 만민을 어루만져 병참을 이룬 것은 소하의 공이며, 백전백승의 공은 한신에 있다.”

 이는 김용서 수원시장이 공직자들에게 자주 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적시적소에 사람을 잘 등용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각 개인의 전문성과 참신한 아이디어를 채택하고, 인격과 개성을 존중해야 성공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자화자찬 같지만 수원시가 전국에서 민간인이 주는 최고의 상, 대통령이 주는 최고의 상, 메이저 언론이 주는 최고의 상 등 각 분야에서 주는 모든 상을 휩쓰는데 이런 마인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끝으로 지식이 자본과 노동을 이끌어 가는 21세기 지도자는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에 대하여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라고 한 전진홍 교수의 말을 되새겨본다. 아날로그인간이 ‘정규대원형’이라면 디지털인간은 ‘게릴라형’이다. 전자는 명령과 위계에 익숙하고 철저한 임무완수형이며, 후자는 자율과 연대를 중시하며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찾는다는 글에서 필자는 방황에서 벗어나 혁신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임병석(수원시 총무국장)